[오늘의 눈] 그들만의 잔치/김승훈 문화부 기자

[오늘의 눈] 그들만의 잔치/김승훈 문화부 기자

김승훈 기자
입력 2015-05-05 17:50
수정 2015-05-0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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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문학인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몇몇 원로 시인들이 앞줄에 근엄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각종 협회나 위원회에서 장(長) 자리에 오른 사람들과 대학 교수, 문단 관계자들도 포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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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훈 문화부 기자
김승훈 문화부 기자
식이 시작됐다. 원로 시인, 협회·위원회 장, 대학 교수 등의 소개가 줄줄이 이어졌다. 나이 지긋한 원로 시인들이 고인과 얽힌 추억담을 얘기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목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시인들이 고인의 시를 낭송했다. 공명이 없었다. 너무 따분하고 지루해 중도에 자리를 떴다. 아무리 둘러봐도 20~30대 젊은 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은 더더구나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문단의 거목이라고 치켜세우는 문인의 기념식에 대중은 없었다.

탄생 몇 주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다른 문학제도 마찬가지다. 심포지엄, 포럼, 학술대회 같은 일반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딱딱한 행사들이 중심 자리를 꿰차고 있다. 대학 교수, 평론가 등 전문가들이 모여 그들만의 글을 읽고, 행사가 끝나면 자료집을 내면 그만이다. 시인들은 문단 관계자들 앞에서 시나 소설을 낭송·낭독한다. 한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문인들의 문학제에 시민들은 없다.

100주년 문학제에 참석했던 한 대학 교수는 “문학제에 굳이 대중을 끌어들일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다”며 “전문가의 의미 부여 한마디가 더 값지고, 유족들 입장에서도 전문가들이 그들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칭송해 문학사에 기록되는 걸 더 원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기자가 만난 모든 문인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문학을 외면한다며 자조하기도 했다. 그런 문인들이 일반인과 완전히 동떨어진 문학제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젊은 층은 물론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모두의 문학제’를 만들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탄만 하지 그들을 문학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문학제가 남녀노소 모두가 어우러지는 말 그대로의 축제가 된다면 젊은 층도 문학에 더 가까워지게 하는 구심점이 될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한 대학교수는 “문학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진다고 한탄하면서도 엘리트 의식 같은 권위에 갇혀 대중과 더 멀어진 문학제를 열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문인들이 많다. 시·소설계의 거목 서정주·황순원, 청록파 시인 박목월, 아동문학가 강소천, 극작가 함세덕…. 올 연말까지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이들 외에도 해마다 탄생 몇 주년을 기리는 문학제나 기념식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줄줄이 개최된다.

문학제가 진실로 축제가 되려면 그들만의 폐쇄된 공간에서 벗어나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그들만의 형식적인 문학제를 연례행사처럼 할 게 아니라 일반인 누구나 무대에 올라 시·소설을 낭송·낭독하고 시민들이 문단의 거목들을 기릴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문단과 학계 관계자들이 뜻을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hunnam@seoul.co.kr
2015-05-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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