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복지 없는 증세’가 문제다/강국진 정책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복지 없는 증세’가 문제다/강국진 정책뉴스부 기자

강국진 기자
강국진 기자
입력 2015-02-12 17:48
수정 2015-02-1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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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국진 정책뉴스부 기자
강국진 정책뉴스부 기자
밥 먹으면 배부르다. 뻔하고 당연한 얘기를 대단한 발견이나 되는 양 강조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건 피곤한 노릇이다. 집권 여당 지도부에서 요즘 많이 하는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딱 그렇다. ‘증세 없는 복지’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증세 없는 복지’는 ‘세금을 더 낼래, 복지를 포기할래’라며 국민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담론이다. 한국 사회의 담론지형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 생각할수록 답답해진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각종 복지정책과 경제민주화 담론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모든 노인에게 소득과 상관없이’ 지급하겠다고 했던 기초연금 공약은 사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던 기초노령연금법 개정안보다도 더 급진적이었다. 하지만 두툼한 새누리당 대선공약집 어디에서도 재원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찾을 수 없었다. 박 후보는 줄기차게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 감면 축소, 세출 구조조정을 거론했을 뿐이다. 증세라는 부담스런 정책도 피해 가고 복지 공약으로 중간층 표심까지 얻는 전술은 선거에서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국정 책임자가 되자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박근혜 정부 들어 지하경제 양성화는 활로를 찾지 못하고, 비과세 감면은 지지부진하며, 세출 구조조정은 표류하고 있다. 절박한 개혁 과제인데도 불구하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과제가 조세재정 제도라는 큰 틀 속에서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렇게 하세요”라고 지시만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조세 수준이 조세 구조를 결정하며, 조세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국가의 정치적 의지라는 사실이다. 복지국가를 원한다면 부가가치세를 높여서라도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증세 거부는 이미 정책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이 돼 버린 듯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복지 확대를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증세는 불가피하다. 세수결손이 지난해 기준으로만 11조원이나 됐다.

정부 부채도 계속 늘고 있다. 해마다 늘어나는 복지예산은 사실 거의 공적연금과 공공부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는 연말정산 논란과 담뱃값 인상에서 보듯 사실상 이미 증세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연말정산제도 개편은 조세형평성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고, 담뱃값은 지금보다 더 많이 인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국민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패널조사 등 여러 설문조사에서 나타나는 여론 동향을 비롯해 지난 총선과 대선을 떠올려 보면 국민 여론이 복지를 지향하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는 곧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증세를 감당하겠다는 여론도 꾸준히 늘고 있다. 국민이 분노하는 건 조세형평성이 높지도 않고 재정지출이 양극화 완화나 행복한 혹은 안전한 삶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는 불신 때문이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복지 없는 증세’에 있다. 감히 ‘복지 있는 증세’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betulo@seoul.co.kr
2015-02-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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