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경 금융부 기자
최수현 전 금감원장은 직원들에게 주말 근무를 시키고 일요일에도 매주 출근해 각 부서의 현안을 보고받던 ‘열혈남아’였다. 하루에 외부 일정을 서너 개씩 소화한 데다 회의 때도 두 시간씩 혼자 ‘떠들’ 정도로 열정이 남달랐다. ‘진격의 최수현’이라는 별칭도 거기에서 나왔다. 직원들은 방대한 업무량에 지치고, 직설적 화법에 상처받기도 했다. 취임식에서 “국민검사청구제를 도입하겠다”며 폭탄 발언을 한 것도 두고두고 입길에 오르내렸다. 으레 은행권 인사들과 가졌던 첫 간담회를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와 갖고, 금감원장으로는 처음으로 대부업계 행사에 참석하는 등 이런저런 화젯거리를 끊임없이 만들어 냈다.
그에 반해 취임 두 달을 맞은 진 원장은 “지나칠 정도로 몸을 사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용하다. 금융위원회와 사사건건 부딪친 전임 원장과 달리 뚜렷한 소신을 내세우지 않아 ‘존재감이 없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금감원장이 안 보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자세를 낮추고 업계 자율을 존중하겠다는 신임 원장의 방침은 박수받을 만하다. 하지만 ‘보신주의’로 흘러서는 안 될 일이다.
가계대출 급증, 동부건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등 연초부터 금융권 난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시중은행들은 올 상반기 중 대기업 여신에 대한 옥석 가리기와 함께 부실자산 정리에 나설 공산이 높다. 이렇게 되면 구조조정 기업이 예상보다 대폭 늘어날 수 있다. 그런데도 금감원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얘기가 금융권에서 나오는 것은 뭔가 께름칙하다.
금융위와 함께 ‘기술금융’만 외쳐 대는 금감원을 보며 한 금융권 인사는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닌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내부(금감원)에서는 “‘윗선’(금융위)과 너무 코드가 잘 맞아 자칫 목소리를 못 내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는 걱정도 나온다.
진 원장은 취임 이래 줄곧 ‘백조론’부터 ‘무음의 플루트 연주자’까지 임직원들의 신중한 행보를 강조 또 강조하고 있다. 어찌나 ‘입조심’을 시키는지 “노이로제 걸릴 지경”이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일부 기자들도 취재가 안 돼 농반진반 “(금감원이 있는) 여의도를 떠나 (금융위가 있는) 광화문으로 옮기겠다”고 볼멘소리다.
진 원장은 이제 막 첫발을 뗐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먼데 ‘어떻게 가겠다’보다 ‘완주하겠다’는 의지만 불태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지랖 넓게 걱정이 든다. 성급한 입놀림으로 혼선을 주어서도 안 되지만 도무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침묵도 경제 주체들을 헷갈리게 한다.
조용하다고, 신중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white@seoul.co.kr
2015-01-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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