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참여와 들러리/김동현 사회2부 기자

[오늘의 눈] 참여와 들러리/김동현 사회2부 기자

입력 2014-09-18 00:00
수정 201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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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사회2부 기자
김동현 사회2부 기자
박원순 시장의 집무실에서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박 시장 재임 기간 서울시가 펴낸 책들이었다. 책의 제목을 찬찬히 살펴보다 몇 가지 단어가 반복해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을공동체, 생활, 참여, 커뮤니티, 소통….

박 시장 1기 때 강조됐던 이 말들이 갖고 있는 무게는 지금도 그대로다. 서울시 기자실에 붙어 있는 직제표를 살펴봐도 시장 박원순 위에 ‘시민’이라는 단어가 박혀 있다. 직제표를 보고 있으면 정말 서울시가 사람 중심, 시민 참여 행정을 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직원들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다. 사람 중심 행정, 시민 참여 행정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는 셈이다. 발단은 송파에 건설 중인 제2롯데월드 임시개장 허가 문제였다.

서울시는 추석을 앞두고 제2롯데월드의 임시개장 허가 여부를 사전 개방행사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는 방식으로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시민들의 의견을 듣겠다니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시민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제2롯데월드 사전 개방행사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건물 내부를 둘러보기 전 20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롯데 측이 마련한 동영상을 보게 된다. 영상에는 제2롯데월드 건설에 참여했던 기술자들이 나와 건축 기법의 우수성을 설명하기에 바쁘다. 심지어 한 외국인 기술자는 “비행기와 충돌해도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방력의 상징인 펜타곤도 9·11 테러 당시 비행기가 충돌해 184명이 사망했다. 결국 롯데 측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 펜타곤보다 튼튼한 123층짜리 빌딩이 우리나라에 세워지는 것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건물 내부투어다. 화려하게 장식된 내부를 걷다 보면 확실히 눈은 호강을 하게 된다. 건물을 둘러본 시민들은 “안전성에 대해선 모르겠고 어떤 브랜드가 입점을 하는가에 대해선 확실하게 알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들러리”라는 말이 50대 초반의 남성에서 툭 튀어나왔다. 시는 아니라고 하지만 적지 않은 시민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추석 연휴 뒤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자 시는 ‘전문가들의 안전 점검’에 비중을 더 높이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시민 참여는 분명 훌륭한 문제 해결법이다. 하지만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들면 오히려 독이 된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데 시민들이 불안해 한다면 시가 나서서 설명해야지 기업한테 홍보를 하라고 하면 안 된다. 시가 결정할 것을 시민에게 미루면 그것은 참여가 아닌 직무유기다.

moses@seoul.co.kr
2014-09-1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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