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한림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여기에 한술 더 떠 ‘보복 소비’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여행이나 외식, 쇼핑 등을 못하다가 확산세가 둔화되자 그간 못했던 여가 활동을 소비로 보상받자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일부 명품 브랜드나 백화점 등이 ‘나를 위한 소비’로 포장해 이를 부추기는 면도 없지 않다.
또 다른 우려스런 측면이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생겨난 소비나 여가 생활의 양극화 문제이다.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 이들은 이런 재난 같은 상황에서 건강하지 않은 생활 패턴이 반복되면 몸과 마음이 위험한 환경에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존 C 머터 교수는 ‘재난 불평등’이라는 책에서 ‘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할까’라는 화두를 던진 바 있다. 실제로 요즘의 상황은 사회·경제적으로 선택지가 적은 ‘중독 취약계층’에게 더욱 가혹하다.
전 세계적인 감염 위기 상황에서 불안·우울 등의 감정이 생기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다. 문제는 대처하는 방법인데,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고 편하면서 가성비가 좋게’ 찾는 것이 디지털미디어다. 순간적 또는 지속적인 몰입, 적절 또는 과도한 자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디지털 중독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 함정이다.
실제로 최근 중독 예방 연구네트워크인 ‘중독포럼’이 전국 성인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전후 중독성 행동 변화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사회적·생활 속 거리두기 기간 중 과도한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 사용 등 이른바 ‘행위 중독’의 위험 요소들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게임 이용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비해 24.4%가 늘었고 스마트폰 이용은 44.3%가 늘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우울, 불안, 불면 증상을 겪었는데 이들의 경우 정상에 비해 온라인 게임이나 스마트폰 이용, 성인용 콘텐츠 시청 등이 더욱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불법 경륜·경정 사이트 신고건수가 늘고, ‘코로나19 확진자수 맞추기’, ‘TV 시청률 맞추기’ 등 기상천외한 불법 도박 사이트도 횡행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이용이 확대되면서 중독 취약층인 청소년과 어린이들의 도박 중독도 확산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중독 예방을 위해서는 올바른 디지털미디어 활동 증진 프로그램 개발, 사행성·음란성 콘텐츠에 대한 접근과 마케팅 제한 등 균형 잡힌 대책 마련을 위한 범사회적인 고민이 시급한 시점이다.
2020-07-1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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