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소비와 과잉생산으로 인한 만성적인 수급의 불일치에 있다. 그 근간에는 쌀 생산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시행되는 소득보조정책이 있다. 현재 쌀 산업에 주는 정부 보조는 시장가격과 관계없이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는 고정직불제와 시장가격이 목표가격에 미달할 경우 지급하는 변동직불제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보조정책이 쌀 생산을 유인하고 과잉생산 기조를 고착화시킨다는 것이 일반적인 진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여러 전문가들은 각자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어 정책 입안자들은 더욱 혼란스럽다.
일각에서는 변동직불제를 폐지하고 고정직불제 단가를 인상해 구조조정을 촉진하자고 한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고정직불제를 폐지하고 변동직불제를 현실화하자고 한다. 그러나 가격변동에 대한 보험의 성격을 가지는 변동직불제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보상의 성격을 가진 고정직불제와는 역할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현재의 농업 여건을 고려할 때 이 두 제도 모두 포기하기 어렵다. 변동직불제를 폐지하면 가격이 급락할 경우 경영수지가 급속하게 악화돼 생산기반이 붕괴될 가능성이 높고, 변동직불제의 부활에 대한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1996년 미국 농업법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는 고정직불금만 높이고 쌀 산업의 문제는 그대로 남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고정직불제를 폐지할 경우 농업소득이 그만큼 하락하고, 이는 변동직불금의 상승 압력으로 전환될 것이다.
쌀 문제에 대한 해법은 쌀 생산 기반을 유지하면서도 비효율적인 예산의 낭비를 막고 시장기능을 회복하는 데 있다. 즉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당면한 쌀 산업의 문제는 변동직불제의 조건으로 생산 감소나 전작을 요구하는 제도 도입으로 풀어야 한다. 이 제도는 쌀 농가의 소득을 보전해 식량안보 기반을 유지하는 동시에 과잉생산 기조를 해소해 정부의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줄이는 유용한 정책이 될 것이다. 쌀 생산농가가 변동직불금을 받기 위해서는 정부가 사전에 정한 비율에 따라 휴경 또는 전작을 해야 하는 생산조절 정책을 통해 선제적인 수급조절이 가능하다. 휴경된 면적에 대해서도 논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보상의 성격을 가진 고정직불금이 지급되며, 여건에 따라 일정 금액의 변동직불금도 지불할 수 있다. 만약 휴경 면적에도 경작 면적과 동일한 변동직불금을 지불한다면 농가 입장에서는 기존 제도와 거의 동일하지만 휴경 면적만큼 생산이 감소하기 때문에 시장가격이 상승해 기존 제도에 비해 변동직불금 지출이 줄고, 재고관리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과잉생산으로 고통받던 1980년대에 작목별로 다양한 형태의 의무휴경 제도를 운영했다.
우리 정부도 시장수급을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블루박스(blue box) 제도의 도입을 전향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생산 조절형 직불제는 휴경 면적에 무조건 돈을 주는 기존의 생산조정제와 달리 납세자의 비난을 피할 수 있으면서도 정부의 선제적 조절 능력을 강화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16-10-1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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