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국민국가의 의미

[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국민국가의 의미

입력 2024-08-28 00:13
수정 2024-08-2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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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주권을 지닌 근대국가를 ‘국민국가’라 부른다. 국민은 영어 ‘네이션’(nation)의 번역어인데, ‘민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네이션’은 국가(state)의 힘이 미치는 영토 범위에 거주하며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총체다. 흔히 민족과 관련해 혈연성을 내세우지만, 역사적으로 모두 파악하기란 어렵다. 오히려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이들이 확장된 가족과도 같은 사이를 형성하게 됐다는 주장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이 주권을 갖게 됐다는 역사적 현실은 무엇을 뜻할까? 이는 먼저 주권이 국민에게 속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전제한다. 당시 국민은 주권자인 국왕의 신민이라는 지위를 지녔다. 하지만 왕정을 폐지하고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권을 갖게 됐을 때 국민주권의 원리가 제시됐다. 그럼 시민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특정 도시의 주민 권리나 도시를 중심으로 큰 부를 이룬 부르주아의 권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라틴어로 도시를 뜻하는 ‘키비타스’(civitas)는 정치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추상적인 의미의 시민권은 국가로 대표되는 정치공동체의 일원으로 각자의 몫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시민권은 국민에게 특정인이나 특정 계층의 지배 또는 통치를 받기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스스로 지배하고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그렇기에 시민권을 부여받은 국민 또는 민족 개념은 항상 혈통이나 세습에 입각한 신분제 타파를 전제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권이 신분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부여될 수 있다는 생각은 천부인권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정리하면 국민주권이란 인권사상에 기반해 한 국가의 구성원 모두가 차별 없는 시민권을 부여받았을 때 성립한다. 흔히 국민, 영토, 주권은 국민국가의 세 요소를 이룬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 요소는 국민주권의 의미가 충분히 전제됐을 때 간결한 표제어로 내세울 수 있다.

요즘 국민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시작점이 언제인가의 질문이 사회적 논쟁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민주권의 원리를 천명하며 민주공화국을 채택했지만, 현실적으로 세 요소를 구비하지 못했으므로 시작점이 되기 어렵다는 주장이 논쟁의 불을 지폈다. 이 주장은 동시에 어쩔 수 없이 그 이전에는 한국인의 국가와 정부가 일본일 수밖에 없지 않냐는 논리를 펼친다. 즉 한국인의 역사에서 일본이라는 국가와 정부에 정당성을 부여하자는 뜻이다. 일면 그럴듯하다. 단 그 국가가 국민국가가 아니라면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과연 한국인이 진정한 의미의 국민, 즉 인권을 기반으로 차별 없는 시민권을 지닌 국민이었는가라는 점이다. 이런 고민 없이 국가의 세 요소만 읊조리는 것은 영혼 없는 기계음일 뿐이다. ‘국민’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대한‘민국’을 천명한 임시정부의 치열한 고민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시작점에 대한 논쟁을 넘어 우리는 현재 우리가 처한 정치적 현실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홍용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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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용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홍용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2024-08-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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