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아무리 그래도 불이 있어야 불맛도 내고 제대로 요리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 주방에서 불이 사라지면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다. 가스 공사 비용이 절감되고, 불이 불완전 연소하며 생기는 일산화탄소가 사라져 주방 공기질이 좋아진다. 열효율이 더 높은 데다가 청소도 간편해 여러모로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불맛만 포기한다면 말이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한 레스토랑 주방. 오로지 땔감을 이용한 우드파이어를 통해 전통식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가스 없이 모든 기물이 전기로 세팅돼 있는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현대식 주방.
혹자는 불을 발견해 요리를 시작한 것이 인류에게 커다란 혁명이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혁명적인 사건은 한참 후 벌어진다. 불꽃에서 음식을 보호할 수 있는 용기, 즉 토기 냄비의 발명이다. 불과 식재료만 갖고는 굽는 요리밖에 하지 못하지만 냄비가 있으면 불꽃으로부터 음식을 보호하며 삶거나 찌는 요리를 할 수 있다. 역사 시간에 무늬 있는 토기가 중요하다고 배운 것도 실은 이와 연관이 있다. 용기는 음식을 보관할 수도 있으니 불만 이용하던 시대와 열을 이용해 요리하던 시대는 먹는 데 있어 전혀 다른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은 오랫동안 열원을 나무에서 얻어 왔다. 요리를 하기 위해선 장작을 구해 불을 지폈다. 근대에 와 석탄과 연탄의 시대가 왔고, 머지않아 상대적으로 깨끗한 가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제는 가스도 과거가 돼 가고 있다. 화석연료차에서 전기차 시대로 진입하는 것처럼 주방기기도 전기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전기와 가스를 동시에 사용하는 일반적인 이탈리아 레스토랑 주방 풍경.
흥미로운 건 이런 현상에 반기를 드는 요리사들의 행보다. 가스나 전기조차 쓰지 않고 땔감과 숯만으로 불을 피워 요리를 고집하는 이른바 우드 파이어 트렌드는 이미 요리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저마다의 철학과 이유는 다르지만 날것의 불을 이용해 전기기기로만 이뤄진 현대식 주방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풍미를 불어넣겠다는 전략이다. 아무래도 전기를 다루는 요리사보다 불을 다루는 요리사가 더 매력적으로 보여서일까.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맛에 소비자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선 나름의 ‘하이브리드’ 주방이 일반적인 형태가 돼 가고 있다. 주요 화구는 인덕션을 쓰되 숯을 피울 수 있는 화로를 하나 두는 것이다. 값비싼 인덕션 장비도 마련해야 하니 업주는 울고, 숯불을 피워야 하니 요리사는 더 고단해졌지만 그래도 고객 만족을 위해서니 어쩌겠는가.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열을 다루는 사람의 숙명일지니.
2022-03-24 2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