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위기로 정쟁, 외교적 자해 행위
‘마이너스 정치’ 말고 초당 협력해야


미국 에너지부(DOE) 가 지난 1월초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책임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것을 두고 정치권의 ‘네 탓 공방’이 눈 뜨고 보기 힘든 수준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어제 “친중·반미 노선의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 국정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공격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선동적 핵무장론 탓”이라고 맹공했다. 미국 정부는 한국의 민감국가 지정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다가 어제서야 우리 외교부에 한국 연구원들이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 보안 규정을 어겼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한다. 근거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당대표들이 나서 서로 삿대질부터 한 꼴이다. 탄핵 정국에 통상·안보 외교에서 ‘한국 패싱’ 우려가 가뜩이나 심각한 현실이다. 여야가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 한데 이런 적전분열은 일부러 하기도 어렵다. 외교적 자해 행위다.
두 달 이상 DOE가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올린 것조차 몰랐던 정부의 무능을 둘러싸고 책임 공방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정부만의 탓도 아니다. 12·3 계엄 사태 이후 여당과 야당 어느 한쪽도 외교안보의 컨트롤타워를 뒷받침해 줄 의지를 보인 적이 없다. 그런 여야가 이 위기 상황에도 진영 논리에 따라 분열을 조장하고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연금개혁, 반도체특별법 등 긴급한 현안은 방치하고 국정협의회마저 표류시키고 있는 여야가 아닌가. 그 사정을 국민이 다 알고 있는데 안보를 놓고도 당대표들이 무책임하게 공방을 벌이는 행태까지 지금 국민 앞에 보이고 있는 것이다. 착잡하기만 하다.
미 정부는 국익을 잣대로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경제안보 위협, 테러 지원 등을 이유로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시킨다. 우리가 북한과 이란, 중국, 러시아 등과 동급으로 분류될 판이다. 그렇게 되면 군사정보 협력, 방산 기술 이전 제한 등 우리의 국익 침해는 실로 엄청나다. 특히 원자력과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협력이 제한되면 우리의 에너지 정책 등 미래산업의 발전 기반이 틀어질 수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조만간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지만 그야말로 소 잃고서 외양간을 고치는 상황이다.
다음달 15일 발효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실효성 있는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 패싱’이 고착화하지 않도록 전략적 외교를 가동하고 첨단산업 보호 대책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런 형편인데 여야가 네 탓 공방할 겨를이 있는가. 국회 결의안의 실익을 정밀 진단하는 등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함께 총력을 쏟아야 한다.
2025-03-18 3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