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예산 따내기 담합’으로 비치는 영호남 만남

[사설] ‘예산 따내기 담합’으로 비치는 영호남 만남

입력 2014-11-06 00:00
수정 2014-11-0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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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경북·전남 지역 여야 국회의원 26명이 정치권에서부터 지역 갈등의 파고를 조금이라도 줄여 보자며 만든 단체가 바로 ‘동서화합포럼’이다. 올 1월엔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하고 3월엔 답방으로 경북 구미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기도 했다. 국민 대통합의 결정적 단초인 영호남 화합의 물꼬를 트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평가할 만하다. 영호남이 하나가 되기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은 진작부터 있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4년 ‘호남에 제2의 지역구 갖기 운동’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민망할 정도로 보잘것없었다.

영호남 지역주의는 근래 들어 완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지만 여전히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존재다. 평소에는 잠복해 있다가도 선거 때면 으레 코브라처럼 고개를 바짝 쳐든다. 결코 만만찮은 지명도와 명망을 지닌 인사도 영호남 ‘적지’(敵地)에서 출마하면 여지없이 패하고 만다. 지난 7월 재·보궐 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된 것을 놓고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 정도였으니 지역주의의 벽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동서화합포럼이 출범했을 때 많은 국민은 모임의 진정성을 반신반의하면서도 한 가닥 기대를 걸었다. 고착화된 지역 구도에 어떤 식으로든 균열을 낼 필요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지역구 의원들이 보여 준 것은 이벤트적 성격이 짙은 전직 대통령 생가 교환방문 같은 일 외에는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동서화합포럼 의원들이 그제 8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오랜만의 회합인 만큼 동서화합을 위한 다양한 지역 현안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힘을 모아 예산을 많이 따내자는 것 외에는 주목할 만한 얘기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예산을 많이 따와야 한다”고 한 영남 지역구 의원이 있는가 하면, 어느 호남 지역 의원은 “(예산만) 책임져 주시면 저희 전남 발전을 위해 영혼을 팔겠다. 최경환 부총리를 비난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양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파는 꼴 아닌가.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절감으로 전국이 끌탕인 마당에 대구∼광주 간 88고속도로 확장 공사를 조기에 완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했을 때 이미 동서화합포럼의 진정성은 의심받은 터다. SOC 사업을 밀어 주는 것이 영호남 화합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닐 것이다. ‘예산공조’를 위해 특정 지역 국회의원 수십 명이 무리를 짓는 것은 자칫 ‘담합’으로 비칠 수도 있다. 동서화합이란 이름의 욕망의 정치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2014-11-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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