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2의 장자연’ 못 막을 용두사미 수사

[사설] ‘제2의 장자연’ 못 막을 용두사미 수사

입력 2009-04-25 00:00
수정 2009-04-25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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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장자연 자살사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어제는 탤런트 고 장자연씨의 49재 날이었다. ‘혹시’하는 심정으로 지켜봤던 경찰의 수사 결과는 ‘역시’였다. 연예기획사 관계자 3명, 감독 2명, 금융인 3명, 기업인 1명 등 9명을 술접대 강요 등 혐의로 입건하는 데 그쳤다. 중간수사 발표라곤 하지만 구속자 한 명 없는 상태여서 수사 추동력은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박연차리스트’와 함께 대한민국을 뒤흔들던 두 개의 리스트 중 하나였던 ‘장자연리스트’의 결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하고 허망했다. 변죽만 울린 경찰수사력의 한계였다.

피해자는 지하에서 말이 없고, 사건의 열쇠를 쥔 기획사 대표 김모씨는 일본으로 달아난 상태이므로 결말이 뻔하다는 시중 여론 그대로였다. 이름이 거론되던 유력 언론사 대표는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의 면죄부를 받고 빠져나갔다. 성매매특별법 위반혐의는 돈 거래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아예 적용하지 못했다. 형법상 성접대 및 술접대 강요죄의 적용도 쉽지 않아 보인다.

김씨가 검거되면 수사가 재개되겠지만 장자연은 이미 잊혀진 인물이 될지도 모른다. 일본 법원의 범죄인 인도심사 등 절차를 밟아 신병을 넘겨받으려면 3개월 정도의 기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한국언론의 ‘냄비근성’은 유명하지 않는가.

2002년 연예비리 사건을 수사했던 김규헌 서울고검 검사는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지 않으면 제2, 제3의 장자연은 계속 나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2개월 동안 방송사 간부와 기획사 임원 16명을 구속기소하고, 12명을 불구속 기소했으며, 20여명을 수배했다. 당시 김씨도 수사대상이었지만 홍콩으로 도피했다. 8년 뒤 발생할 사건의 불씨였던 셈이다. ‘약자에겐 군림하고, 강자에겐 기는’경찰의 용두사미 수사가 ‘성접대’라는 이름의 비뚤어진 문화의 불씨를 이 땅에 또 남겼다. 유감을 금할 수 없다.
2009-04-2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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