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찰,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선 설설 기나

[사설] 경찰,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선 설설 기나

입력 2009-04-02 00:00
수정 2009-04-02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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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행정관인 김모씨와 장모씨가 방송통신위원회 신모 과장과 함께 종합유선방송 사업자인 티브로드 측에게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당초 이 사건은 청와대 행정관들이 룸살롱에서 술을 얻어먹고 이차로 성접대를 받았다는 정도로 알려졌다. 그러나 티브로드가 케이블TV 업체 합병을 추진하면서 그와 관련해 힘을 쓸 만한 인물들에게 향응을 베풀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의혹은 ‘성상납 로비’ 쪽으로 확산됐다. 그런데도 경찰은 로비 의혹을 밝히는 일은 수사 범위 밖이라고 도외시하는 등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는커녕 덮어 두기에 급급해하는 행태를 보였다.

하긴 특정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듯한 경찰의 행태가 이번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장자연 리스트’ 수사에서도 경찰은 문건을 보거나 보도한 기자들을 불러들여 조사하면서도 유족들이 진즉에 고소한 유력인사들에 대한 조사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게다가 대상자들이 술자리에 동석했다는 이유만으로는 범죄 혐의를 판단할 수 없다는 둥 일부 피고소인에 대해서는 소환하는 대신 출장조사를 하겠다는 둥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한다.

청와대 행정관들이 업무와 관련해 성접대를 받았다든지, 사회 유력인사가 연예기획사와 결탁해 여성 연기자에게 성 상납을 요구한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힘 있는 자들’을 수사하는 건 제 일이 아닌 양 시간만 끌고 있다. 그렇잖아도 경찰 내부에 각종 비리가 잇달아 터져 강희락 경찰청장은 취임 직후 조직쇄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쇄신안이 아니다. 경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이 치죄할 때만 경찰관 스스로 ‘민중의 지팡이’로 거듭날 테고 국민은 경찰을 다시 신뢰할 것이다.
2009-04-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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