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훈의 간 맞추기] 시도할 가치가 있는 출마

[유정훈의 간 맞추기] 시도할 가치가 있는 출마

입력 2021-03-02 17:08
수정 2021-03-03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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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훈 변호사
유정훈 변호사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회고록 ‘약속의 땅’(A Promised Land)은 지난해 11월 20여개 언어로 동시 출간됐다. 아쉽게도 한국어판은 아직 소식이 없는데, 국내 독자들도 조만간 접할 수 있길 바란다.

대선 출마에서 임기 초반까지 이어지는 격동의 사건들도 흥미롭지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며 의심하고 때로 집요하게 파헤치는 부분이 ‘버락 오바마’라는 사람을 잘 드러낸다고 느꼈다. 본인 스스로 ‘과대망상’이라는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자격을 갖추었다고는 했지만, 이런 톤의 회고록은 드물다.

오바마는 2004년 상원의원 당선 직후부터 대선주자로 주목을 받았다. 2006년 중간선거 때는 그의 인기에 힘입으려는 지원 유세 요청이 쏟아졌다. 마지막 지원 유세를 마치고 귀가한 날 밤,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 잠을 이룰 수 없던 그는 자신을 덮친 두려움의 근원을 추적한다. 그건 지금의 인기를 잃을지 모른다는 것, 아무 업적 없이 의회에서 시간만 보낼 수도 있다는 우려, 경선 혹은 대선 패배에 대한 걱정도 아니었다. 현장에서 엄청난 지지 열기를 확인하고 ‘내가 진짜 대통령이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빠진 것이다.

2006년 12월, 오바마가 가족 및 측근들과 대선 출마를 결정하는 최종 회의 자리였다. 남편 버락이 주의회 의원, 연방상원 의원, 대통령으로 급을 높여 출마할 때마다 반대했던 아내 미셸이 묻는다. “민주당에 당신 말고도 대통령 될 만한 사람이 많은데 당신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대선 도전이 가치가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묻는데, 대체 왜 당신이 대통령을 해야 하지?”

뻔한 얘기를 늘어놓던 버락이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말한다. “물론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어. 내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는 순간 세상은 미국을 다르게 보게 될 거야. 이 나라의 많은 아이, 흑인, 히스패닉, 부적응자 신세인 아이들. 그들이 스스로를 다르게 인식하고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될 거야. 그것만으로도 이 도전은 시도할 가치가 있어.”

다들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의 오랜 흑인 후원자들은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 방에 모인 다른 인종과 배경의 사람들이 흑인이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는 장면을 같은 마음으로 상상하고 있었다. 버락의 애타는 기다림 끝에 미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기, 그거 꽤 괜찮은 대답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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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이 보궐선거를 점령한 모습, 대선 지지율 조사에 오른 인물들의 면면에 약간의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닐 것이다. 오바마 회고록을 요즘도 곁에 두고 인상적이었던 페이지를 종종 펼쳐 본다. 정치 혐오를 키우지 않기 위한 나름의 처방이랄까. 낙선이 아니라 당선을 두려워하는 정치인,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리고 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 정도의 출마 동기를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는 후보가 나오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지지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2021-03-0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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