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이 세상의 주인공/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이 세상의 주인공/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김성호 기자
입력 2017-01-04 18:12
수정 2017-01-0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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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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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는 행인도, 내닫는 차량도 드물게 한산한 어둠의 거리. 편집국에서 내려다보는 정유년 정초(正初) 새벽의 세종로는 평온하기만 하다. 의혹과 증거가 난무하는데도 ‘모르쇠’만 무성한 새해 초. 초행자라면 주말마다 만들어지는 성난 촛불의 군집이 믿기지 않을 듯한 그 분노의 거리는 이 정유년에 어떤 변신을 거듭할까.

세종로를 포함해 전국 밤거리를 달군 분노의 천만 촛불은 농단(斷)과 그 농단에 휘둘린 대통령을 겨냥한다. 맹자 ‘공손추장구’(公孫丑章句) 속 농단이란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이익, 권력을 독차지한다는 뜻을 갖는다. 맹자가 제나라 객경의 자리를 사퇴하려 하자 제나라 선왕이 사람을 보내 잘 대접하겠다는 심경을 전하려 했다는 과정에서 유래한 교훈의 경구. “한 못난 사나이가 있어 농단(높이 솟은 언덕)을 찾아 그 위로 올라가 좌우를 살핀 다음 시장의 이익을 그물질했다. 사람들이 이를 밉게 보아서 그에게 세금을 물리게 됐는데 장사꾼에게 세금을 받는 일이 이 못난 사나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을 회유하려는 선왕에게 전해 경종을 울렸다는, ‘처신을 잘하라’는 경계의 일침일 터. 하지만 그 교훈은 이 땅에선 거꾸로 온 나라를 뒤흔든 비극으로 바뀌었다. 즉각 퇴진과 하야, 심지어 구속, 체포의 극단적 구호마저 외면과 무시로 되돌려지는 농단의 비극은 자괴감의 충돌로 더 슬프다.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라는 푸념은 ‘이러려고 대통령을 뽑았나’라는 민심으로 환치됐다. ‘바람 불면 꺼진다’는 촛불이 ‘바람 불어 더 강해지는’ 촛불로 번지는 모순의 연속이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따져 보면 그 농단의 바탕은 주인공의 실종이다. ‘어땠길래 이 지경인가’, ‘무슨 짓을 했길래 그토록 휘둘렸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비상식에 맞선 민심 이반과 상실감은 모두 주인 없는 국정의 심장을 향하지 않는가. 대학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도 그 민심 이반의 딱부러진 대변이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그 전복의 교훈은 누가 주인이고 그 주인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겨눈다.

‘최순실 게이트’로 명명된 국정 농단의 끝은 특검수사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치닫고 있다. 그 끝에 곧 닥칠 수 있는 대통령 선거를 향한 정국의 요동이 심상치 않다. 그 와중에 많은 정치인들이 ‘어떠한 경우에도 얽매이지 않아 주체적이고 자유자재한다’는 ‘수처작주’(隨處作主)를 입에 올린다.

그래서일까. 정유년 아침 종교계 지도자들이 낸 신년사도 주인공으로서의 올바른 처신을 당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청와대에 초청받아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고 했던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은 신년사에 이런 주문을 담았다. “우리가 내 삶과 세상의 주인공으로서 지혜로운 판단과 선택으로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건설한다면 역사는 정유년을 희망과 행복의 해로 기록할 것이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암울한 세상을 허물 주인공은 바로 나 아닐까. 눈 똑바로 뜨고 뒤집어지지 않을 튼튼한 배를 띄워 보자.

kimus@seoul.co.kr
2017-01-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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