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소드 라인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소드 라인

입력 2019-04-30 17:36
수정 2019-05-0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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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봄, 대전
2015년 봄, 대전
극한 몸싸움과 막말이 오간 ‘난장 국회’로 정치권이 요동친다. 의회정치가 태동한 이래 의회 내 물리적 충돌은 세계 각국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정치가 성숙하면서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 됐다.

영국의 하원 의사당은 구조가 특이하다. 여야가 마주 보고 앉게 돼 있다. 의장석에서 보아 오른쪽이 여당석, 왼쪽이 야당석이다. 다섯 줄의 긴 벤치가 경기장 스탠드처럼 상대를 마주 보고 있다. 여야의 대결과 토론에 편리한 구조다. 한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의 의회가 의장석을 향해 반원형으로 앉아 있는 구조인데 비해 영국 의회는 의장 앞에 여야가 대립해 앉아 있는 형국이다.

여야 양당 사이에는 두 줄의 빨간색 ‘소드 라인’(Sword Line)이 그어져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검선’(劍線)이다. 여야 의원은 서로 이 선을 넘지 못한다. 양쪽에 서서 칼을 휘둘러도 닿지 않는 거리인 2.5m 너비라고 한다. 긴 칼을 휘둘러도 상대방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할 수 없도록 간격을 뒀다고 해서 ‘검선’이다.

영국이 의회정치가 태동한 나라이긴 하나 초기에는 의원들 사이에 폭력 사태가 매우 잦았다. 의원들에 기사 출신이 많아서 의견이 충돌하면 의사당에서 칼부림까지 나곤 했다. 서로 가까이 앉아 치열한 논쟁을 벌이다 보니 말로 안 되면 주먹과 칼이 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싸움이 나더라도 절대 넘어가면 안 되는 선, 빨간 줄을 두 개 그어 놓고 그것을 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지금도 영국 의회에서는 이 소드 라인을 사이에 두고 여야 대표들이 나와 연설을 주고받으며 끝장토론을 벌인다. 간혹 여야 간 공방이 격화돼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져도 의장이 “질서”를 두어 번 외치면 이내 수습된다. 뜨거운 공방과 야유, 조소가 오가지만 물리적 폭력이 동원되는 경우는 없다.

골목길에서 마주친 고양이 두 마리가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상대를 덮칠 것처럼 보이지만, 둘은 보이지 않는 ‘소드 라인’을 넘지 않고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제 갈 길을 떠난다. 동물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 21세기에 동물만도 못한 국회는 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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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2019-05-01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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