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성화(聖畫)/이시영
아기 예수가 오셨다는 영하 17도의 성탄 전야, 우성아파트 가는 언덕길 초입에서 군고구마장수 부부가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화덕의 연통을 양쪽에서 꼭 끌어안은 채 칼바람을 맞고 있었는데, 나무뿌리처럼 강인하게 얽힌 그들의 두 팔을 지상의 그 누구도 다시는 떼어놓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누가 나라 살림을 다 말아먹어도 여전히 나라가 돌아가는 이유는, 영하 17도의 추위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리고 잠그고 부숴도 물속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이유는, 영하 17도의 추위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필 이 겨울에 아기 예수가 오신 이유는 그가 칼바람 속을 걷는 작은 촛불이기 때문이다. 촛불을 쥐고 있으면 서로의 손이 느껴진다.
누구도 이 사랑을 멈출 수 없다.
언덕길 너머 우성아파트 한 칸에 불이 켜지고, 가족들이 군고구마를 앞에 놓고 둘러앉았다. 부르지 않아도 먼저 와 있는 것이 있다.
우리는 나무뿌리처럼 얽혀 있다.
누구도 저 미래를 멈출 수 없다.
신용목 시인
2016-12-2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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