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천항에서
눈물로 가슴 맑게 닦은 아침
겨울비에 몸 씻은 보리밭 이랑
푸른 바람에 댓잎처럼 마음 뒤집어
푸른 생명 칠하며 바다에 나갔지요
아침 햇살 눈물처럼 맑고
맑은 것은 서럽다고 파도 노니는
바다는 속으로 푸르른 산
긴 세월 지나 바다에 몸푼 당신이 흘린 눈물
미역으로 자주 흔들리는 나를 보듬고
작아서 우리 삶 같은 애잔한 통통배 소리
물비늘 건반 타고 내가 한줌 뼛가루로 흩어질 때
아, 어머니 우주의 헌법이 있다면 사랑이라고
철새들 푸드득 다시 만날 기약으로 날아올라요
‘우주의 헌법이 있다면 사랑’이라는 말을 걸어 두고 백 년쯤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법은 어머니 같아야 한다는 믿음을 걸어 두고 천 년쯤 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눈물 속에서 흔들리는 미역처럼 아침 햇살이 맑은 이유에 대해, 맑은 것이 서러운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날들입니다. 그리고 다시 ‘읍천항’을 ‘팽목항’으로 읽으며 ‘바다는 속으로 푸르른 산’ ‘바다는 속으로 푸르른 산’ 읊조리면, 내 안에 통통배처럼 무언가 지나가고 하얀 뼛가루를 뿌리며 새들이 날아오릅니다. 오늘 하루 속에서 삶과 죽음이 만 년쯤 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용목 시인
2016-12-10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