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열의 메디컬 IT] 인공지능은 진료실을 정말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상열의 메디컬 IT] 인공지능은 진료실을 정말 변화시킬 수 있을까

입력 2016-07-18 23:28
수정 2016-07-1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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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열 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이상열 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올 연말 한 해를 장식할 키워드는 ‘알파고’나 ‘인공지능’이 될 가능성이 거의 100%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역사적 대국 이후 이 단어들은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소 지나치게 소비되고 있다. 이제 인공지능은 필자가 전공하는 당뇨병을 포함한 의료의 여러 분야에서도 큰 관심사다. 머지않아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알파닥’이 나타나 진료실의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급진적 예측마저 공감을 얻고 있다.

최근 미국 당뇨병학회에서 IBM 왓슨의 담당자가 인공지능 연구를 위해 의료계와 협력하겠다고 선언한 내용도 직접 지켜봤다. 임상정보, 유전체,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모바일 디바이스 등 다양한 종류의 빅데이터가 종횡으로 연결되고 이 데이터가 인공지능 연구에 활용돼 특이점을 넘는 순간 미래 의사의 진료실에는 분명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필자는 이런 예상에 모두 동의하며, 실제로 혁신의 일부 결과물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머지않아 경험할 수 있게 확산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인공지능이 의사를 대체한다’는 식의 다소 선정적 전망보다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도움을 주고, 의사와 환자 간 소통에 도움을 주는 유용한 ‘진료 보조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일부 미래학자들의 낙관적 예측보다 다소 보수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의료와 의학은 다르다. 의학은 과학의 범주에 해당되지만 의료에는 과학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요소가 포함된다. 의료의 세계에는 국가, 인종, 문화, 관습, 법률, 빈부격차 등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세상만사가 포함돼 있다. 의료의 세계에서는 냉철한 과학적 인과론에 근거한 합리성의 원칙이 항상 지켜지지는 않는다. 필자는 이 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사람의 마음, 즉 ‘감성’에 대한 고려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당뇨병 환자들은 시간을 맞춰 알맞은 약을 복용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건강 유지에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환자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건강관리에 실패하곤 한다. ‘가족을 간병하게 돼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최근 소화가 잘 안 돼 당분이 많이 든 음식을 자주 먹었다’는 하소연 등 거의 매일 수많은 이유와 설명을 접한다.

열거한 이유 외에도 너무나 다양한 사연에 의해 환자의 혈당과 건강 상태가 변화할 수 있다. 따라서 실전 의료에서는 같은 약을 쓰더라도 환자마다 반응이 다를 수 있고, 약제를 감량했음에도 효과는 오히려 더 좋을 수 있으며 같은 약을 처방하더라도 어떤 의사가 처방했는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 다양한 합병증 가능성을 함께 고려한다면, 환자 진료를 위해 고려해야 할 요인은 더욱 많아지게 된다.

각양각색의 마음에서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며 이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게 사람이고, 이런 사람을 살피는 일이 바로 의료이다. 이런 비논리성, 비합리성의 세계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과학의 관점만으로 환자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려는 계획은 실패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물론 새로운 기술은 미래 진료실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미래의 신형 알파고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에 대한 예측마저 포함한 무시무시한 성능을 자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런 미래는 좀더 먼 길을 가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사람의 다양한 특성을 고려한 맞춤 치료 방법론을 연구하는 것은 알파고뿐 아니라 많은 연구자의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의사의 지혜와 경륜을 로봇이 배워 간다면, 미처 의사가 헤아리지 못한 환자의 마음을 로봇이 배워 나갈 수 있다면 필자의 주장이 기분 좋게 빗나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2016-07-1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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