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의 대서울 이야기] ‘그곳에 마을이 있었다’고 증언하는 신도시 망향비

[김시덕의 대서울 이야기] ‘그곳에 마을이 있었다’고 증언하는 신도시 망향비

입력 2018-09-18 17:52
수정 2018-09-1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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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행정구역으로 서울특별시만이 아니라, 학교나 직장이 서울시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포함해 ‘대(大)서울’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를 활동권역으로 하는 사람들을 단지 그들이 잠잘 집이 서울시 바깥의 도시에 있다고 해서 배제해버리면 서울과 주변 도시나, 신도시의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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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교수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교수
대서울에는 광명·과천·부천·안양·의정부·성남·하남·구리·김포·인천·시흥·고양·남양주 등의 일부 또는 전부가 포함된다. 서울과 별개의 생활권으로 설계한 반월 신공단인 오늘날의 안산이나, 서울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생활권을 지니는 수원·광주·화성·오산·동탄 등은 대서울에 포함하지 않는다. 교통이 긴밀하게 연결돼 부동산 가격이 서울과 연동하는 안성·원주·춘천 등의 지역도 대서울에 묶기에는 사람들의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최근 대서울에 포함되는 서울시 바깥의 도시들을 답사하며 현지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대서울 지역의 거주자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 해당 지역에 신도시가 생긴 뒤 서울에서 그 지역으로 이주·정착한 주민, 그리고 현재 서울을 주요 생활권으로 삼으면서 신도시를 임시 거주지로 삼는 주민 등 이 세 부류가 서울의 접경도시에 존재하고 있다.

이 세 유형의 주민들은 해당 도시와 경기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최근 관심을 갖는 유형의 주민은 신도시가 만들어질 때 고향 마을을 수용당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한 원주민들이다. 이들 원주민은 대개 아무 흔적 없이 이주하지만, 고향이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는 망향비를 세우기도 한다.

이 망향비는 전국적이다. 최근에는 성남시의 1기 신도시 분당과 2기 신도시 판교의 딱 중간 지점에 자리한 ‘동간마을 모향비(慕鄕碑)’가 가장 인상 깊었다. 양반이나 선비가 세운 비석과는 달리 비문을 한글로 새겼고, 뒷면에는 마을 주민의 이름을 일일이 새겼다. 어떤 망향비는 여성 이름도 새겨졌지만, 성남의 이 모향비에는 남성의 이름만 보였다. 그 옆면에는 ‘신도시에 솟은 정’이라는 제목의 절절한 망향가(望鄕歌)를 새겼다. “신도시란 새 이름은 희망도 들어 있어 고향 떠날 아픈 마음 참으려 해도, 멀리 가는 아쉬움에 애가 타는 사연들, 조상님의 은공 쌓인 고향의 산천, 그 많은 세월 속에 쌓인 인정아. 못 잊을 이웃 정은 만날 수야 있지만, 정든 마을 산천초목 안타까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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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망향비야말로 대서울 주민의 삶과 생각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소중한 자료다. 성남시 분당의 중앙공원에는 이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모 양반 가문의 묘소와 비석 등이 ‘문화유적’으로서 정비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양반의 유적보다, 신도시 고층아파트 단지 한 켠에서 신도시 주민들의 관심 밖에서 거미줄까지 처진 이런 망향비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대서울에 살아온 흔적이라, 더 소중하다.

2018-09-19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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