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나폴레옹과 이집트학(하)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나폴레옹과 이집트학(하)

입력 2019-05-05 23:16
수정 2019-05-06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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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더럼대 고고학과 연구원
곽민수 더럼대 고고학과 연구원
본인 스스로가 국립학술원의 기계분과 위원이기도 했던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이 갖는 학술적 성격에 대해서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원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술 조사를 위한 준비도 잊지 않았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립인쇄소에 인쇄인력과 인쇄기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당시에는 로마에 파견을 나가 있었고, 이후 원정대의 학술팀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는 수학자 가스파르 몽주에게 라틴어, 아랍어, 그리스어, 시리아어 등 다양한 언어의 활자를 이집트 현지에서 인쇄할 수 있도록 바티칸에서 출판사와 인쇄소를 섭외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나폴레옹이 이끌었던 이집트 원정이 군사 원정인지 아니면 학술 탐사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사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 이집트 원정을 후자라고 평가하는 쪽이 오히려 나폴레옹의 면을 세워 주는 것이다. 그만큼 이집트 원정의 군사적·정치적 성과는 별 볼 일 없었다. 프랑스군은 계속되는 영국군과 터키군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별 성과 없이 1801년 이집트에 도착한 지 38개월 만에 3분의1로 줄어든 병력으로 이집트에서 철수한다.

그러나 이 원정은 학술적으로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프랑스로 돌아간 원정대의 민간인 전문가들은 1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이집트에서 조사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바로 ‘이집트지’(Description de l’Egypte)다. 풍부한 내용과 아름다운 삽화로 가득 찬 이 백과사전 스타일의 문헌은 유럽 지식인 사회에 ‘이집트 열풍’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때 만들어진 고대 이집트에 대한 열기는 이집트학을 하나의 학문 분과로 자리잡게 하는 배경이 된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군이 원정 과정 중 발견한 로제타 스톤은 비록 발견 직후 영국군에 빼앗기기는 했으나, 1822년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이 최초로 고대 이집트 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한 중요한 단초가 됐다.

이집트 원정 과정 중에 이루어진 프랑스의 학술 활동에 대해 ‘오리엔탈리즘’의 저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렇게 평한다. “동양을 자신들의 편의에 끼워 맞추고 공포심을 조장하여 자신들의 우월성을 확인하려고 했던 서구의 이데올로기적 시도.”

사이드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서구에 대한 적의를 여기서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이후 19세기와 20세기 동안에 서구가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을 다루던 방식을 염두에 둔다면 사이드의 평은 분명히 타당한 면이 있다. 특히 피식민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사이드의 이 평은 쉽게 공감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원정을 긍정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현대 이집트인에 의한 긍정적인 평가다. 대표적 예가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가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하며 1962년에 발표한 ‘통일 아랍공화국 헌장’ 내용이다. 헌장은 프랑스 원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프랑스의 이집트 원정은 당시 이집트 국민의 혁명적 에너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원정은 이집트와 아랍문명으로부터 빌려가 유럽 문명이 완성시킨 현대 과학의 다양한 면을 다시금 이집트에 가져다주었다. 또한 이집트의 현재에 대해 연구하고, 고대 역사의 비밀을 발견해 낸 대가들을 탄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아랍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헌장답게 여기에는 이집트와 아랍문명에 대한 예찬도 들어가 있지만, 프랑스의 원정이 사실은 이집트 침략 전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면 나폴레옹이 주도한 프랑스의 이집트 원정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다.

오늘날 ‘이집트학’이라 불리는 ‘현대인들의 고대 이집트에 대한 열정’의 시발점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있었다.
2019-05-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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