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균미 편집인
사건 발생 직후 젊은 여성 경찰이 가해자를 제지하거나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경 무용론’이 또 득달같이 제기됐지만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여성 경찰, 남성 경찰의 문제가 아닌 경찰관 특히 신입 경찰관의 부실한 교육·훈련이 문제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해당 여성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한 책임이 줄어드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해 현장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신참 경찰들을 대거 배출해 놓고 나 몰라라 손 놓고 있었던 경찰청장 등 경찰 당국의 책임도 이에 못지않게 크다고 생각한다.
인천 흉기난동 사건에 투입된 순경은 코로나19로 인해 4개월의 중앙경찰학교 교육 기간 중 매달 2시간씩 대면으로 해야 하는 현장 대응 훈련을 온라인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전기충격기(테이저건) 실습조차 해 보지 못하고 현장에 배치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현장 대응 훈련 한 번 못 받고 배치된 경찰이 어디 이 사람뿐이겠나. 지난달 29일부터 내년 2월까지 이틀간 현장 대응 교육을 다시 받는 1~2년차 신임 경찰 1만 620명의 사정도 별반 차이가 없을 테니 기가 막힌다.
코로나19 확산 우려 때문에 대면 교육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 번도 대면 훈련을 받지 않은 신참 경찰들을 현장에 배치하고도 불안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사건들이 터지고 나자 부랴부랴 몰아서 시·도청 교육센터와 무도훈련장, 사격장에서 현장 대응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데 왜 진작에 반쪽짜리 교육·훈련을 보완하지 않았을까.
사명감과 현장 대응 능력, 판단력을 갖춘 경찰을 8개월 만에 키워 내기는 쉽지 않다. 학교 교육을 6개월에서 4개월로 줄였다가 다시 6개월로 늘린다고 현장 대응력이 단시간에 높아지지는 않는다. 교육·훈련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이유다.
경찰은 올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권한이 막강해졌다. 하지만 잇따른 경찰의 부실 대응 사건으로 경찰지휘부가 민생과 밀접한 강력 범죄 대응보다 국가수사본부 설치와 자치경찰 등에만 신경이 쏠려 있다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다. 이제는 외형 확대보다 현장의 소리를 반영해 경찰의 수사와 치안 역량을 높이지 않으면 경찰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 경찰에 대한 신뢰는 정치적 사건 수사가 아니라 나와 가족, 이웃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높아진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인천 사건 이후 대국민 사과를 이틀 연달아 했다. 층간소음 난동 사건의 관할서를 방문하고 중앙경찰학교를 찾아 현장 대응 교육을 참관하고 신임 경찰 교육생을 대상으로 특강도 했다. 지난달 24일에는 전국 14만 경찰에 서한을 보내고 비상대응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하지만 25일 경찰청 게시판에 “엄중한 위기 상황이며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고 한 김 청장의 말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청장님은 취임 후 뭘 했습니까”라는 반박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특히 내부 소통 문제를 지적하며 “변해야 하는 조직을 5년, 1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주장했다. 별로 새로울 것 없는 대책을 발표하면서 혁신을 강조하면 불신만 키울 뿐이다.
정치권도 다를 게 없다. 사건이 터지면 그때서야 경찰청장을 찾아가 질책하고 대응책을 촉구한다. 국회의원들의 보여 주기식 정치에 신물이 난다. 국회에서 매섭게 문제점을 따지고 경찰 교육과 훈련에 필요한 예산을 증액하지는 못할망정 지역구 예산을 챙기려고 전 국민의 안전과 관련된 예산을 넘보는 무리수는 두지 말아야 한다.
사명감을 갖고 경찰에 입문한 사람들이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지키는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정치인과 경찰 지도부가 할 일은 공허한 말의 나열이 아니라 실천이다.
2021-12-02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