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균미 칼럼] ‘바짓바람’을 반길 수만은 없는 이유

[김균미 칼럼] ‘바짓바람’을 반길 수만은 없는 이유

김균미 기자
입력 2019-03-13 22:30
수정 2019-03-14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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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미 대기자
김균미 대기자
“예전엔 아빠들의 무관심이 자녀 교육의 필수조건이라고들 했는데, 이제 다 한물간 얘기죠. … 바짓바람의 시대가 온 거죠.”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방영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등장하는 로스쿨 교수 차민혁의 대사다. 대한민국 상위 0.1%의 욕망을 풍자한 드라마 속 차 교수의 ‘피라미드 이론’과 ‘바짓바람’ 발언에 공감하는 ‘아빠’들이 주위에 생각보다 많다. 입시 설명회 장소에 나타나는 아버지들은 이미 일상이 됐다. 자녀를 직접 가르치는 아버지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치맛바람에 빗대 바짓바람이라 부를 만큼 사회적 현상이 된 걸까.

지난 일요일 우연히 TV에서 ‘바짓바람 시대, 1등 아빠의 조건’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중고교에 다니는 자녀교육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여러 아버지를 다뤘다. 학원과 과외를 알아보고 학습 일정을 관리하는 아버지, 같이 공부하며 고교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이들은 부모가 모두 관심을 갖고 자녀를 지도할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입을 모은다. 진로 선택에서부터 심리상태 관리까지 아빠들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강조한다.

교육 전문가들은 대학 입시 전형이 워낙 복잡해지고 수학능력시험과 학교 내신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이 입시에서 중요해지면서 온 가족을 입시전쟁에 뛰어들게 만든다고 진단한다. 아버지들이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대입에 맞춰져 그렇잖아도 경쟁에 지친 자녀를 더욱 힘들게 몰아세워 부모 모두에게 의지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간다면 교육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는 지적이 귀에 쏙 박힌다.

요 며칠 동안 교육 관련 블로그와 카페는 바짓바람을 다룬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으로 뜨겁다. ‘남편과 같이 봤는데 많은 걸 생각하게 됐다’, ‘남편과 꼭 같이 봐야겠다’는 댓글부터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 주는 아버지들이 대단하다’ 등 다양하다.

자녀 교육을 엄마한테만 맡기는 시대는 지나갔다. 자녀의 미래를 위해 시간과 열정, 돈을 쏟아붓겠다는 부모들을 말릴 수도 없다. 그렇다고 아버지들까지 입시전쟁에 가세해야 하는 상황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엄마의 치맛바람과 아빠의 바짓바람을 이분법적으로 접근하거나, 누구의 역할이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라고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잔소리하고 자녀를 닦달하는 건 엄마 역할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줘서도 곤란하다. 자녀의 양육과 교육은 부모 모두의 책임이다. 가정의 상황에 따라 엄마와 아빠의 역할이 다를 수 있을 뿐이다. 부모가 다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롤모델이 돼야 한다.

그래도 자녀의 학습계획을 직접 짜고 일일이 관리하는 아버지 모습이 아직은 낯설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 40대 후반의 대학 진학률이 역대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이들은 자녀 입시를 도와야 한다면 직접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언제든지 그럴 자세도 돼 있다고 한다. 직접 가르치지 못하면 무리해 사교육의 도움을 받을 준비가 돼 있다.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에 불안해하는 부모들의 상태는 학생수는 줄어도 매년 늘어나는 사교육비의 실태가 잘 보여 준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지난 1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29만 1000원이다. 2007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최고다. 지역별·소득수준별 사교육비 양극화가 악화했다. 교육부는 사교육비 대책으로 공교육 정상화와 대학 입시의 투명성과 공정성 강화를 내놓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대입과 교육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웠던 국가교육회의가 여야가 합의한다면 연내에 국가교육위원회로 새로 출범할 수 있다. 정권이나 당파를 초월한 10년 단위의 국가 교육 기본계획을 세우게 된다니 지켜볼 일이다.

대입정책이 교육정책의 전부는 아니지만, 핵심을 차지한다. 국민 대다수는 자녀가 일단 대학에만 입학하면 교육정책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다. 따라서 미래를 좌우할 장기 교육계획을 세우는 국가교육위는 당장의 여론에 휘둘리지 말고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키워 내는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려면 교육 전문가들로만은 한계가 있다.

치맛바람이라고, 바짓바람이라고 비판만 하지 말고 부모의 교육열이 선순환할 수 있는 장기 교육 비전부터 국가교육위는 제시해야 한다.

kmkim@seoul.co.kr
2019-03-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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