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학 번역가
그런데 어디에서 꼬인 걸까? 지금 내가 쓴 마스크는 신화의 화려한 마스크는커녕 추레한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니라 인류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자기 의지로 벗을 수도 없다. 신화가 뒤집힌 것이다. 너희 모두의 입을 막을지니 마스크 벗은 자가 역병과 저주로 세상을 단죄하리로다.
저주의 원인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종교계는 인간이 생명체를 창조하는 불경을 저질렀다 하고 기후론자들은 늘 그렇듯 환경 파괴를 이유로 들었다. 인간의 막말이 도를 넘어 신이 입을 봉인했다는 주장도 있다. 나는 조심스레 막말론의 손을 들어 준다. 교수, 종교인, 정치가, 검사, 의사…. 그렇잖아도 소위 지도층의 막말에 골치가 아프기는 했다. 그들이 증오의 바이러스를 뱉어 내면 사람들은 마스크의 검열도 없이 입에서 입으로 퍼뜨렸다. 내 말이 악취가 돼 내 코를 공격한다.
아침 일곱시 반 출근길 지하철 풍경을 본다. 기왕의 핸드폰에 마스크가 더해지며 획일성의 카르텔도 더욱 공고해졌다. 매일 보고 있건만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제1호 Mask가 Galaxy Note10으로 강남의 부동산 시세를 검색하오.
제2호 Mask가 LG V50으로 강남의 부동산 시세를 검색하오.
제3호 Mask가 Iphone 10으로 강남의 부동산 시세를 검색하오….
1호선 3호차 5번 좌석. 누군가 콜록콜록 기침을 한다. 마스크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을 향한다. 바이러스는 더이상 상징이 아니라 현실이다. 제4호 Mask가 제5호 Mask를 의심하오. 제5호 Mask가 제6호 Mask를 의심하오. 제6호 마스크가 제7호를….
지하철에서 나오자 커다란 전광판의 노란 글씨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스크는 내 친구.” 네 이웃을 멀리하고 마스크를 사랑하라. 개정판 성서가 재빨리 수정된 복음을 발표하지만 교인들은 신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하나가 돼 도시로, 광장으로 몰려간다. 정부가 부랴부랴 마스크를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마스크를 쓰십시오. 남이 씌워 줄 땐 늦습니다.” 내 친구 마스크, 내 사랑 마스크, 내 생명 마스크…. 사랑하는 이웃이여, 반경 2미터 이내 접근을 금함.
마스크는 부조리한 사회를 공격하는 예봉일 뿐 아니라 인간의 나약하고 추악한 본성을 감추는 방어 기제이기도 하다. 신이 우리에게 내려준 것은 후자의 마스크였다. 내 안의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마스크…. 마스크를 쓰자 사람들은 더이상 환경을 얘기하지 않는다. 기후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 어떤 말도 마스크의 검열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바이러스를 핑계로 엄청난 양의 폐기물을 뱉어 낸다. 인간이 벗어 낸 마스크는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신은 정말로 우리를 포기한 걸까? 그래서 역병의 저주를 내린 걸까? 문득 어쩌면 우리를 구원하려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영화 ‘마스크’에서 스탠리 입키스를 구하기 위해 마스크를 내렸듯 신은 인간을 인간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우리에게 마스크를 씌웠을 것이다. 영원히 마스크를 벗지 않는 한 우리는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롭다. 바이러스와 협상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대화를 거부하고 녹색 모니터에 흰 고딕체로 세 개의 단어를 선명하게 찍어낸다. “You are Virus.”(인간이 바이러스다, 영화 ‘바이러스’, 1999)
2020-09-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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