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이재명의 ‘첫 100일’

[데스크 시각] 이재명의 ‘첫 100일’

임일영 기자
임일영 기자
입력 2025-06-19 00:08
수정 2025-06-19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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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돌파한 루스벨트 리더십
李대통령 첫 100일에 필요한 건
완벽한 해답 아닌 변화의 첫걸음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에서 비롯된 ‘첫 100일’(the First Hundred Days)은 새 리더십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간이다. 루스벨트는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 3월 4일 취임했다. 자고 나면 은행이 파산하고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다. 취임 이틀 뒤 뱅크런을 막고자 모든 은행의 영업정지를 명령했다. 9일 의회 특별회기 소집을 요청해 예금자 보호를 위한 긴급은행법을 통과시켰다.

은행 영업 재개를 하루 앞둔 12일 밤 10시, 첫 라디오 연설을 했다. 일주일간 어떤 조처를 내렸고, 왜 했는지,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 설명했다. 자신을 믿고 다시 은행에 돈을 맡겨 달라고 호소했다. 난롯가에서 허물없이 나누는 이야기라는 ‘노변담화’(fireside chat)의 시작이다.

루스벨트는 100일 동안 실업과 빈곤 긴급구제, 일자리 창출, 대규모 공공사업 등 대공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76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신속하고 대담한 추진력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미국 유일의 4선 대통령이 됐고, 여전히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역대 대통령들도 그를 벤치마킹해 ‘집권 100일 계획’을 발표했지만, 그만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경제적 측면에서 루스벨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시장에 관한 종교에 가까운 신념을 가진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가 보여 준 통합의 리더십과 소통 능력에 대해선 누구도 폄훼하기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1년 캠페인 때부터 “루스벨트를 존경한다”고 밝혔다. 루스벨트가 가진 국난 극복의 상징성뿐 아니라 대국민 소통 능력, 실용적 면모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재명 캠프도 루스벨트의 첫 100일처럼 취임 이후 날짜별로 쏟아낼 국정 과제를 준비했다. 2017년 탄핵과 조기 대선으로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가 ‘D+50’ 형태의 로드맵을 준비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될 순 없지만, 우선순위란 게 있다. 놓쳐서는 안 될 화두도 있다. 무엇보다 정치에 대한 신뢰와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정부 존재 이유를 입증해야 한다. 깨어 있는 시민의 저항으로 탄핵에 이르렀지만, 내란 동조 세력이 주류인 정당이 대선에서 41% 지지를 받은 것도 현실이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한 신문 칼럼에서 “내란 사태는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후기 파시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해 줬다”고 했다. 두 번 다시 비상계엄 망령이 고개 들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정치사회 구조의 리셋을 시작해야 한다. 100일 안에 끝낼 일은 아니지만, 국민 지지가 뒷받침된 초기에 흐름을 잡아 나가야 한다.

저출생·고령화에 성장 엔진마저 꺼져 가던 터에 내란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리는 민생경제도 살려야 한다. ‘잃어버린 30년’을 겪지 않기 위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불과 몇 달 만에 올 성장률 전망치가 0.8%로 반 토막 났다. 수출로 먹고사는데 미국의 관세 분탕질로 기업들은 비명을 지른다. 제조업뿐 아니라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미래 먹거리 경쟁력도 중국에 추월당했다. 고용지표는 외환위기 때만큼 어렵다. 그렇다고 부양책에만 의존해선 곤란하다. 부동산 과잉투자에 눈감은 과거를 답습해서도 안 된다.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구조개혁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

노변담화에서 보듯, 커뮤니케이션은 대통령의 책무다. “국민 이해와 신뢰를 얻는 힘은 메시지 반복에서 나온다. 리더가 목표와 할 일을 반복해 말하는 것은 신념과 진정성을 의미한다.”(유민영 외 ‘바이든의 첫 100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완벽한 답이 아니라 변화의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100일 안에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1000일 안에 끝날 수도 없죠. 하지만 우리, 시작해 봅시다.”(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취임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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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일영 경제정책부장
임일영 경제정책부장
2025-06-1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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