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스토리보다 빅토리가 필요할 때

[데스크 시각] 스토리보다 빅토리가 필요할 때

이창구 기자
이창구 기자
입력 2024-10-14 04:15
수정 2024-10-14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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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구단 한화 올해도 하위권
조직의 적은 패배의 습관화
승리 경험 없인 전진 힘들어

사상 최초로 1000만 관중을 돌파한 한국 프로야구가 요즘 ‘가을 잔치’를 벌이고 있다. 프로야구가 전 국민의 레저로 성장한 데에는 ‘야구 빼고 다 잘하는’ 한화 이글스의 공이 적지 않다.

올 시즌 한화의 홈 경기 매진은 무려 47회에 이르렀다. 1995년 삼성 라이온즈가 세운 36회 매진 기록을 훌쩍 넘어섰다. 원정 경기 관중 동원력도 한화가 1위다. 한화가 원정팀일 때의 평균 관중 수는 1만 8033명으로, 전국구 구단으로 정평이 난 롯데(1만 7273명), 삼성(1만 6954명), 기아(1만 6824명)를 제쳤다. 독수리가 뜨면 전국 어디에서나 관중이 구름처럼 모였다.

‘9-10-10-10-9-8’. 최근 6년의 이글스 성적이다. 사실상 ‘만년 꼴찌’인데도 큰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팬들이 만든 풍부한 ‘스토리’ 덕이다. 한화 팬들은 18연패에 빠졌을 때도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를 불러 젖혔고, 0-10으로 지는 경기에서도 8회만 되면 전원 기립해 ‘최. 강. 한. 화’를 외친다. 속은 문드러졌겠지만, 겉으로는 인내와 긍정의 상징이 돼 ‘보살’로 불린다. 결과보다 과정을 즐길 줄 아는 팬들이며,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많아도 내일을 기다릴 줄 아는 팬들이다.

2024시즌은 한화가 ‘성공 스토리’까지 추가할 절호의 기회였다.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한 류현진을 필두로 6선발 체제를 완성한 듯했고, 안치홍 등이 가세해 타선에서도 신구조화를 이룬 것처럼 보였다. 계속된 꼴찌 덕에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뽑은 문동주, 김서현, 황준서 등 젊은 강속구 투수들도 즐비했다.

하지만 한화는 개막 초 8연승 이후 곧바로 하위권으로 주저앉았다. 시즌 중반에 백전노장 김경문 감독을 영입해 반전을 노렸지만, 최종성적은 8위였다. 지난해보다 한 계단 올라서고 팀 승률이 4할대(0.465)를 돌파한 게 그나마 위안이지만, 당초 기대와 전망에 비하면 초라하다.

한화가 이번 시즌에도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뭘까? 승리 경험의 부족과 패배의 습관화를 꼽고 싶다. 강팀의 경우 주전 선수가 컨디션 난조를 보이면 다른 선수들이 십시일반 짐을 나눠 지는데, 한화는 팀 전체로 슬럼프가 번지기 일쑤다. 안치홍 혼자 타율 3할에 겨우 턱걸이(0.300)한 점, 팀 타율이 8위(0.270)에 머문 점은 밋밋한 공격력을 보여 준다. 다승, 평균자책점, 승률, 세이브, 홀드, 탈삼진 등 투수력 지표의 각 부문 톱5에 단 한 명의 선수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점은 빈약한 방어력을 보여 준다. 다른 구단에서 펄펄 날던 선수도 한화에 오면 그저 그런 모습을 보이곤 한다.

해결사도 없었다. 한화는 9월 초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5위 자리를 놓고 KT, SSG, 롯데와 치열한 순위 싸움을 벌였다. 2009년부터 2024년까지 꼴찌만 8번 한 한화로서는 한국시리즈 못지않은 결정적인 승부의 연속이었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4번 타자 노시환은 9월 4일부터 11일까지 7경기 동안 안타를 딱 하나(26타수 1안타 9삼진) 쳤다. 겨우 만든 찬스가 4번 타자에서 끊기는 일이 반복되자 팀은 스스로 무너졌다.

무엇보다 기본기가 약했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수비 포지션이 수시로 바뀌었다. 테이블 세터인 1, 2번 타자도 경기마다 달랐다. 포지션 경쟁이 치열해서가 아니라 누굴 내세워도 불안했기 때문이다. 한화의 수비 효율은 8위에 그쳤다. 나홀로 10승을 거둔 뒤 류현진은 “팀 승리는 제가 어찌할 수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에이스의 개인 성적과 팀 승리가 따로 가는 팀은 이기기 힘들다.

웃자고 보는 야구에 죽자고 달려들어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어느 조직이든 ‘스토리’보다 ‘빅토리’가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성과제일주의,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되면 안 되겠지만, 성공과 성취의 경험이 없는 조직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아름다운 패배 스토리’에 안주하는 한 승리의 경험은 쌓이지 않는다.

이창구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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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구 편집국 부국장
이창구 편집국 부국장
2024-10-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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