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홍콩 시위 사태가 일깨워 준 이솝 우화/류지영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홍콩 시위 사태가 일깨워 준 이솝 우화/류지영 국제부 차장

류지영 기자
류지영 기자
입력 2019-12-05 17:32
수정 2019-12-0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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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영 국제부 차장
류지영 국제부 차장
지난달 말 홍콩을 다녀왔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홍콩 특별행정구 구의회 선거(24일)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정부 관계자와 대학교수, 홍콩한인회 간부 등을 만나 6개월째 이어진 홍콩 시위 사태의 근본 원인을 물었다.

뜻밖에도 이들은 ‘부동산 불평등’을 꼽았다.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을 폐기하고자 들고일어난 진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집값 문제였다는 진단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홍콩에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대학이 여럿 있다. 영국 ‘QS 2020년 세계 대학순위’에 따르면 홍콩대(25위)와 홍콩 과기대(32위)는 서울대(37위)보다 순위가 높다. 중문대(46위)와 홍콩 시립대(52위), 홍콩 시위대가 점거했던 이공대(91위)도 100대 대학에 들어간다. 홍콩의 인구가 우리나라의 7분의1인 750만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과다.

그런데 이들 학교를 나와도 대졸자가 받는 첫 월급(중위소득)은 2만 홍콩달러(약 310만원)가 되지 않는다. 세계은행 기준 지난해 홍콩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 8717달러(약 5800만원)로 한국(3만 1362달러)을 크게 앞선다. 홍콩의 경제수준을 감안하면 너무 빠듯한 액수다. 홍콩의 시간당 최저임금도 5800원 정도로 우리나라(8350원)보다 적다. 상당수 홍콩 주민들은 우리보다 훨씬 팍팍하게 산다고 봐야 한다.

월급이 작다면 주거비라도 저렴해야겠지만 홍콩의 집값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지간한 아파트는 3.3㎡당 가격이 우리 돈 1억원을 넘는다. 전 세계 투기자본과 중국 본토의 검은 돈 등이 천정부지로 값을 올려놓은 탓이다. 명문대를 졸업해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집을 살 수 없다. 전세제도가 없는 이곳에서 ‘2030’세대는 월세살이를 숙명으로 여긴다. 문제는 이곳 평균 월세가 350만원가량 된다는 점이다. 부부가 대학을 나와 맞벌이를 해도 월급의 절반이 집세로 나간다.

일부 젊은이들은 결혼을 하고도 각자 부모 집에서 생활하며 연애하듯 살아간다. 신혼집이 없어서다. 심지어 어떤 부부는 일부러 혼인신고를 안 하고 아이를 낳는다. 한부모 가정인 것처럼 꾸며 사회적 약자에게 제공되는 임대주택을 얻기 위해서다. 제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기 힘으로는 조그마한 집 한 채 마련 못 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홍콩 시민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든 ‘집단 무의식’이 됐다는 설명이다. 모든 사회에서 법과 제도, 윤리 등 ‘상부구조’는 경제라는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이론이 홍콩에서만큼은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다.

홍콩 구의원 선거가 있기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이 MBC ‘2019 국민과의 대화, 국민이 묻는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최근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한 생각을 묻자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부동산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답한 뒤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안정화됐다”고 마무리했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분명 문제가 있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늘 말했지만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인한 불평등 문제에는 아무 언급도 없었다.

청와대 어느 누구도 ‘불편한 진실’은 보고하지 않은 채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답만 해준 듯하다. 우리 대통령이 이솝 우화에 나오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한 여당 관계자를 만났다. 대통령이 몇몇 측근들로 이뤄진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다는 우려가 당내에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부동산 투기를 방치하면 우리 역시 홍콩처럼 될 수도 있음을 대통령은 제대로 듣고 있는지 걱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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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ryu@seoul.co.kr
2019-12-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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