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아베를 몰랐다/임일영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아베를 몰랐다/임일영 정치부 차장

임일영 기자
임일영 기자
입력 2019-08-06 00:04
수정 2019-08-06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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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일영 정치부 차장
임일영 정치부 차장
#1. 2018년 2월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당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지 말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권과 내정에 관한 문제”라고 반박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당시 아베 총리는 한 나라 정상으로 볼 수 없는 비상식적 발언과 태도로 일관했다”고 했다.

#2. 한국의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 배제를 처리하는 각의가 열리기 전날인 지난 1일 일본 자민당 총회. 아베 총리는 “엄중함이 증가하는 국제 정세 안에서 국익을 지켜 나가 헌법 개정 등 곤란한 문제를 한 몸이 돼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두 발언을 곱씹어 보면 아베 총리가 무모할 정도로 경제보복을 밀어붙이는 속내가 엿보인다. 한반도 냉전체제 와해에 대한 경계심, 1990년대 이후 우파의 숙원인 개헌 드라이브를 가속화해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와 불안 확산은 덤일 것이다.

아베 총리가 전후 최장기 집권을 이어 가는 데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원치 않은 조연을 했다. 궁지에 몰릴 때마다 북한의 도발 덕에 기사회생했다. 북핵은 패전의 잔재인 평화헌법 9조 개정을 골자로 한 개헌의 명분이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뒷배인 우파 로비스트 단체 ‘일본회의’를 추적해 온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는 ‘일본회의의 정체’에서 “일본의회와 아베 정권이 총력을 기울이는 개헌은 증오하는 전후체제의 상징이요 핵심이며 원흉의 타파”라고 했다. 하노이 담판 결렬 이후 비핵화 대화가 소강국면에 접어들었지만 6월 말 판문점 남북미 회동으로 아베 총리는 다시 불안에 사로잡혔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고자 하는 아베 총리가 뜻을 이루려면 동북아의 긴장·갈등은 필수적이다.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발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터라 여론을 들쑤실 필요가 있었는데 한일 갈등은 매력적인 불쏘시개였다.

지난 1일 미국이 한일에 ‘현상동결합의’(스탠드스틸) 중재안을 내놓은 뒤 정부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던 게 사실이다. 한미동맹 못지않게 비대칭적인 미일 관계를 생각하면 일본이 과연 미국 뜻을 거스를 수 있을까란 생각일 터.

하지만 ‘역시나’였다. 미국의 관여는 제한적이었고 현 국면을 개헌 동력으로 삼으려는 아베 총리의 의지가 더 강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재연장이 변수지만, 앞으로도 미국 개입으로 봉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폭주기관차’를 제어할 방법은 없을까. 지난 2일 이후 당정청의 대응책에 ‘결기’는 느껴지지만 당장 상대 숨통을 조일 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역설적으로 일본 여론을 우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을 안겨 준 것도 일본 유권자란 점에서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전후 일본 체제의 민낯을 다룬 대담집 ‘책임에 대하여’에서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는 “아베 정권의 장기화를 허용한 여러 요인들이 일본 사회에 내재돼 있다”고 했고,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 교수는 “위안부나 징용공 문제는 이미 일본 사람들 의식 속에 과거화돼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냉철한 대응과 물밑 교섭 못지않게 아베 정권의 뒤틀린 욕망을 드러내는 여론전을 일본에서 적극 벌일 필요가 있다. 일본 지성인들이 수출 규제 철회 서명운동에 돌입하고, 화이트리스트 배제 이후 극우 매체를 제외하면 비판적 논조가 두드러진 점은 고무적이다. 독도 갈등이 첨예했던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 연설을 빌리자면 하루이틀에 끝날 싸움은 아니다. 유야무야 끝낼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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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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