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침묵하면 ‘돌’들이 일어나 외친다/안동환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침묵하면 ‘돌’들이 일어나 외친다/안동환 문화부 차장

안동환 기자
안동환 기자
입력 2018-02-12 17:32
수정 2018-02-1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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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환 국제부 차장
안동환 국제부 차장
2010년 10월 법무부 장관이 동석한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안태근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의 성추행. 여검사의 삶은 그 장례식장에서 멈췄다. 밝은 옷과 치마를 즐겨 입던 그녀는 상복 같은 검은색 바지만 고집했다. 보이지 않는 ‘원심력’에 떠밀린 그녀는 15년차 검사의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해 점점 먼 곳으로 유배됐다.

서지현 검사가 지난달 29일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에는 ‘참고 침묵하기만 했던 내 잘못이라는 건가’라고 자문하는 대목이 있다. 서 검사가 여러 경로로 제기한 성추행 문제는 묵살됐고 인사 보복이 뒤따랐다. 서 검사가 자유 의지로 침묵을 깬 건 자의반 타의반 8년 동안 침묵한 대가(“내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검사라는 사실을 잊은 채 검찰 내부의 힘없고 작은 부품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를 깨달은 후다.

독일 사상가 한나 아렌트가 홀로코스트 전범 재판에서 목격한 것처럼 ‘악’(惡)은 평범한 이들의 침묵에서 시작됐다. 부패와 독직을 방조한 건 다수의 침묵이다. 약자의 목소리가 억압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악에 무감각해진다. 침묵은 원심력보다 구심력이 더 크다.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일어나 소리 지르리라.’ 성경 구절처럼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일어나면서 ‘침묵의 카르텔’이 깨지고 있다. ‘#미투’(나도 피해자다)는 성폭력 고발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침묵해 온 부조리로 확대된다.

아이디 ‘인니’라는 방송작가가 지난달 24일 KBS 구성작가협의회 게시판에 올린 ‘내가 겪은 쓰레기 같은 방송국, 피디들을 고발합니다’라는 글이 대표적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목격자들’ 등 유명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작가는 “밖에서는 정의로운 척, 적폐를 고발하겠다는 피디들이 내부의 문제엔 입을 ‘조개처럼 꾹’ 닫았다”고 비판했다. 인니의 글에 다른 작가들의 ‘미투’가 잇따랐고, 한 무더기 글에 비친 방송계는 ‘갑질 천국’이었다. 최저임금보다 적은 급여로 작가들을 착취하고, 폭언과 모욕적 언사로 순응하게 했다. 회식 자리에 신인 가수를 불러 노래하게 하고, 여성 작가의 무릎 위에 앉아 술을 마신 피디를 증언한 대목은 엽기적이고 기이할 정도다.

서지현 검사,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외압을 폭로한 안미현 검사, 문단 권력을 저격한 최영미 시인, 인니 등 침묵의 성채에 ‘짱돌’을 던지고 있는 건 여성이다.

미국 여성 사회운동가 리베카 솔닛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창비)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솔닛은 여성을 침묵시켜 온 체제의 원인으로 ‘언어의 부재’를 꼽는다.

성희롱·성추행 같은 표현은 1970년대에 발명된 신조어다. 대중적으로 쓰인 건 1990년대 들어서다. ‘데이트 강간’이나 ‘여성 혐오’는 여전히 일반인에게는 낯선 개념이다. 현상은 존재했지만 말은 부재했던 시대의 목소리는 제한되거나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솔닛은 “새로운 인식에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건 ‘침묵을 거부하고 말하기 시작한 여자들’이 아니라 침묵을 거부하고 외치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미투’의 본질은 성 대결이 아니라 강자의 억압과 횡포의 고발이다.

주의 사항도 덧붙인다. 하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함부로 가르치려 들지 말라. 둘, 그 목소리를 내 것인 양 가로채 이용하지도 말라. 셋, 누군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면 경청하라.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더이상 침묵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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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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