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일영 정치부 차장
지난 16일 전병헌 전 정무수석의 예기치 않은 사퇴로 청와대는 고민에 빠졌다. 가까스로 조각(組閣)의 퍼즐을 맞추고 국정운영의 드라이브를 걸려던 즈음 예기치 않게 사달이 빚어진 것이다. 적임자로 꼽힌 강기정·박수현(현 대변인) 두 전직 의원이 고사하면서 매듭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사실 전 전 수석이 사퇴한 직후부터 청와대 일각에선 한병도 정무비서관이 조심스럽게 거론됐다. 전 전 수석의 사퇴 다음날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한 비서관이 (하마평에서)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넌지시 말했다. 인선이 난항을 겪자 일각에선 직제 개편을 통한 ‘정무수석 폐지론’마저 거론됐다. 여소야대인 데다 각 정당 대표의 리더십이 불안정하고, 헤게모니가 복잡다단한 탓에 웬만해선 협치의 실타래를 풀기 어렵다는 게 논거였다. 차라리 참여정부의 전례(2004년)대로 정무수석을 폐지하는 편이 낫지 않냐는 것이다.
하지만 정무 기능을 겸한 비서실장의 고충을 체험한 문 대통령이 정무수석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애초 유의미한 주장은 아니었다. 문 대통령은 결국 2012년 대선과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2·8 전당대회, 5·9 대선까지 거치면서 신뢰를 이어온 전직 초선(17대) 의원 한병도 수석을 선택했다. 3선을 지낸 전 전 수석의 바통을 이어받은 한 수석이 짊어진 짐은 사뭇 무겁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비롯한 개혁입법 처리와 여·야·정 협의체 가동, 개헌 등 산적한 과제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6개월 보수야당·언론들은 임종석 비서실장을 비롯한 전대협 출신 청와대 핵심들에 대해 밑도 끝도 없이 사상 검증을 하자고 달려들었다.
청와대가 궁극적으론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한반도 안보위기를 해소해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을 때마다 86그룹(19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 운동권)의 ‘과거’와 결부지어 해석하려는 보수세력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이 전대협 3기 의장을 지낸 임 실장과 당시 전북지역 조국통일위원장을 지낸 한 수석의 인연을 이유로 임 실장의 ‘그립’(장악력)이 강해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수석으로선 그들의 벼린 칼날을 버텨내면서 임명권자의 ‘옳은 선택’이었음을 결과로 입증해야 하는 짐을 ‘덤’으로 진 형국이다.
정무수석은 칭찬받기는 쉽지 않고 욕먹기는 좋은 자리다. 1968년 초대 조시형 수석 이후 이 자리를 거쳐간 48명 중 여야에서 두루 호평을 받은 이들은 손으로 꼽힐 정도.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박준우 수석을 제외하면 친박 인사들을 임명했지만 존재감이 없거나 ‘완장수석’이란 비아냥을 들었다. “정무가 전부”란 말이 있다. 대국회 관계를 풀어 가는 것은 기본이다. 대통령이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하는 데 정무 라인의 담백한 보고와 냉철한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상식과 동떨어진 인사나 정책 판단으로 폭주한 것은 정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촛불민심으로 세워진 이 정부에서 한 수석이 새로운 상을 그려 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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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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