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정 논설위원
싸움닭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엄마들 이야기다.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끼고 사는 아이들과 옥신각신 실랑이하는 게 일상사인, 대부분 가정의 익숙한 풍경이다.
지난주 바다 건너 날아온 뉴스 하나에 오래 눈길이 갔다. 일본 아이치현의 작은 도시 가리야시. 지역 초·중등학교들이 밤 9시 이후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시는 다음 달부터 자체적으로 만든 제도를 전면 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물처럼 공기처럼 생활 깊숙이 침투한 스마트폰 사용을 강제규범으로 단속한다? 그것도 질풍노도의 한가운데 서 있는, 그 무섭다는 중학생들을 상대로?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하도 신기해 기사를 두 번 되짚어 읽었다. 학교들은 학부모 회의를 열어 밤 9시 이후 자녀의 휴대전화는 학부모가 보관하는 내용의 결의를 했다.
일본의 초·중등학교는 이미 휴대전화 학내 반입이 금지돼 있다. 그 규정을 어길 경우에도 교사는 문제의 휴대전화를 학생이 아닌 부모에게 반환하게 돼 있다 한다. 그런 상황인데도 대책의 강도를 높인 소도시의 배짱이 대단했다. 게임에 중독돼, 문자나 이메일에 제때 답하지 못해 따돌림을 당할까봐, 한밤중에도 휴대전화를 끼고 사는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정면돌파 카드는 신선했다.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이기는 어딜 가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스마트폰 강국인 우리는 말할 것도 없다. 며칠 전 미래창조과학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10대 청소년 4명 중 1명(25.5%)은 스마트폰 중독위험군에 들어 있다. 더욱이 스마트폰 때문에 학업에 지장을 받거나 금단현상을 겪는 청소년 중독자는 1년 새 7.1% 포인트나 급증했다. 이들이 하루에 스마트폰에 코를 박는 시간은 평균 5.4시간. 가장 몰두하는 서비스는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모바일 메신저였다. 대부분 학교들이 등교 직후 휴대전화를 걷어 하굣길에 돌려주고 있는 사정을 감안해 보자. 방과 후 학원수업, 식사시간 정도를 빼고 잠들기까지 금쪽같은 시간을 휘발성 잡담을 주고받기로 엿 바꿔 먹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발 빠른 할리우드라면 ‘노예 5.4’쯤 되는 제목의 사회고발성 다큐멘터리를 찍게 생겼다.
이쯤 되니 신약 처방이 없던 시절의 호환마마보다 아이들에게 더 무서운 게 스마트폰이다. 지난주 대통령이 나선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보면서 국가 백년지대계의 우선순위를 생각해봤다. 우리 10대들의 디지털 노예 처지를 언제까지 손 놓고 지켜봐야 할까.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쓴소리를 또 한번 감수하더라도 대통령이 ‘청소년 디지털 디톡스 끝장토론’판을 펼쳐줬으면 싶다.
사회병을 만들며 막대한 이득을 본 통신회사들도 염치를 보여줄 때가 아닌가 싶다. 통신 먹통사고를 내고 배상금 몇 천원 내놓는 게 대수가 아니다. 한 달에 한 번쯤 휴대전화를 안 쓰는 날이라도 정해 청소년 캠페인을 벌이는 기업의 품위는 달나라에서나 찾을 얘긴가. 그제 국내 한 대기업이 한 해 20억원씩 인문학 발전에 후원해 르네상스를 이끈 이탈리아 메디치가가 되겠다 자처했다. 하지만 죽어 가는 인문학보다 더 급한 불이 ‘노예 5.4’들이다. 인문학을 되살려놓은들 훗날 노예 5.4들에게는 그 토양을 지켜낼 역량이 없다. 통신업계의 ‘메디치 정신’이 더 아쉽고 더 급하다.
sjh@seoul.co.kr
2014-03-28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