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사회부 법조출입 기자들에게는 ‘징크스’가 있다. 한번 발을 들여놓게 되면 다른 부서로 전출갔다가도 언젠간 다시 불려오고, 그렇게 두번, 세번 법조와 인연을 맺으며 경력의 3분의1이나 절반 정도를 사건 속에 파묻혀 지내는 것이다. 이쯤 되면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곳보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이 더 익숙해지기도 한다. 38개월간 베이징 특파원으로 드넓은 중국 대륙에서 국제뉴스를 취재하다 올 초 귀국하자 역시나 다시 서초동 현장을 맡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횟수로 네번째, 5년 만의 복귀다. 타사 동료기자들과 법조인들은 반갑게 맞이하면서도 “또 왔어요?”라며 ‘징크스’를 피하지 못한 데 대한 측은함을 표현했다.
예전의 기사들을 뒤적이며 법조기자로서의 감(感)을 찾아 나가는데, 지금 서초동에서 ‘상영’되고 있는 권력 실세 ‘비리 드라마’의 10년 전 ‘원작’이 눈에 확 들어온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한두 달 앞뒀던 이맘때 쯤이다. 전국이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떴지만 서초동은 비리수사로 한창 뜨거웠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세 아들, 이른바 ‘홍삼(弘3) 트리오’가 모두 검찰의 수사대상이었다. 같은 해 5월 16일 마침내 서초동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한 DJ의 막내아들 홍걸씨는 200여명의 기자들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부모님께 면목이 없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지난 25일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서초동 대검찰청에 모습을 나타냈다. 건설 브로커로부터 서울 양재동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과 함께 5억~6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권력 실세다. 70대 중반 노인 체력으로 감당하기 버거웠을 14시간의 조사를 마치고 이튿날 새벽 대검청사를 나서는 최 전 위원장은 현직에 있을 때의 당당했던 위세가 무색하게 “몸둘 바를 모르겠다.”며 몸을 낮췄다. 이제 ‘왕차관’으로 불리며 전횡을 휘두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소환될 터이다. 대통령의 ‘형님’인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의 이름도 무대 주변에서 어른거린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2002년 봄 서울지검 형사부 부장검사로, 최재경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서울지검 특수부 부부장검사로 DJ의 세 아들 관련 비리수사를 서초동에서 지켜봤다. 정확히 10년 만에 재연된 서초동의 권력 실세 비리 드라마는 이처럼 ‘배우’만 바뀌었을 뿐 감독이나 관객, 대사까지 똑같다.
검찰의 비리 수사 재연극은 관전할 땐 흥미진진하지만 보고 나면 허탈하다. 10년 전에도 그랬다. 권력자의 측근에게는 이권을 노린 업자와 브로커들이 몰려들었고, 그들 간에는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액수의 돈이 오간다. 퀴퀴한 냄새가 풀풀 나고, 더러운 소문이 꼬리를 물지만 드라마는 항상 권력의 끝물에서야 상영되곤 한다. 권력의 정점에서 단죄가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싶은 까닭이다.
최 전 위원장이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은 시점은 2007~2008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대선캠프를 거쳐 정부 출범 후 막강 권한이 부여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올라 전권을 휘둘렀다. 종합편성채널 선정도 주도했다. 그 시기 최 전 위원장은 이미 범죄 혐의자였던 셈이지만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검찰도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권력의 정점에서는 관련 인사들의 범죄행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사정은 헤아릴 수 있다. 혐의를 입증할 증거나 진술 등이 부족한 상황에서 섣불리 수사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도 인정한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권력 실세의 비리 수사가 왜 꼭 권력 말기에 집중되는 지, 거기에 검찰의 ‘권력 눈치보기’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더 이상 허탈한 서초동의 비리 수사 재연극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권력 주변 인사들의 자정 노력도 중요하지만 시점을 가리지 않는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만 가능하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stinger@seoul.co.kr
박홍환 논설위원
지난 25일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서초동 대검찰청에 모습을 나타냈다. 건설 브로커로부터 서울 양재동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과 함께 5억~6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권력 실세다. 70대 중반 노인 체력으로 감당하기 버거웠을 14시간의 조사를 마치고 이튿날 새벽 대검청사를 나서는 최 전 위원장은 현직에 있을 때의 당당했던 위세가 무색하게 “몸둘 바를 모르겠다.”며 몸을 낮췄다. 이제 ‘왕차관’으로 불리며 전횡을 휘두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소환될 터이다. 대통령의 ‘형님’인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의 이름도 무대 주변에서 어른거린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2002년 봄 서울지검 형사부 부장검사로, 최재경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서울지검 특수부 부부장검사로 DJ의 세 아들 관련 비리수사를 서초동에서 지켜봤다. 정확히 10년 만에 재연된 서초동의 권력 실세 비리 드라마는 이처럼 ‘배우’만 바뀌었을 뿐 감독이나 관객, 대사까지 똑같다.
검찰의 비리 수사 재연극은 관전할 땐 흥미진진하지만 보고 나면 허탈하다. 10년 전에도 그랬다. 권력자의 측근에게는 이권을 노린 업자와 브로커들이 몰려들었고, 그들 간에는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액수의 돈이 오간다. 퀴퀴한 냄새가 풀풀 나고, 더러운 소문이 꼬리를 물지만 드라마는 항상 권력의 끝물에서야 상영되곤 한다. 권력의 정점에서 단죄가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싶은 까닭이다.
최 전 위원장이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은 시점은 2007~2008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대선캠프를 거쳐 정부 출범 후 막강 권한이 부여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올라 전권을 휘둘렀다. 종합편성채널 선정도 주도했다. 그 시기 최 전 위원장은 이미 범죄 혐의자였던 셈이지만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검찰도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권력의 정점에서는 관련 인사들의 범죄행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사정은 헤아릴 수 있다. 혐의를 입증할 증거나 진술 등이 부족한 상황에서 섣불리 수사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도 인정한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권력 실세의 비리 수사가 왜 꼭 권력 말기에 집중되는 지, 거기에 검찰의 ‘권력 눈치보기’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더 이상 허탈한 서초동의 비리 수사 재연극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권력 주변 인사들의 자정 노력도 중요하지만 시점을 가리지 않는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만 가능하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stinger@seoul.co.kr
2012-04-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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