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를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삼성전자 고위 임원은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애플의 CEO가 아닙니다. 주식회사 스티브 잡스입니다. 한마디로 One Man Company(1인 회사)라는 얘기입니다.”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미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인데, 중요한 것은 세계의 아이폰 고객들이 제품 성능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라는 CEO에 매료돼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혹자는 스티브 잡스의 매력은 검증된 도덕성과 미래예측능력이라고 말한다. 20살에 애플이란 회사를 차렸지만 10년 뒤 그 회사에서 쫓겨났고, 이후 설립한 neXT를 애플이 인수하면서 애플의 CEO로 다시 오른 과정은 그의 끊임없는 도전과 자기성찰을 말해 준다는 것이다. 주주 중심이 아닌 고객 중심의 경영철학도 오늘의 그를 만든 동인이라고 한다. 귀감이 되고 부러운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국내로 눈을 돌리면 한국판 스티브 잡스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 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국내 굴지의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회장님을 한번 보자.
검찰 조사를 한두번 받지 않은 사람이 없고, 법정 투쟁으로 날밤을 새운다. 잊을 만하면 또다른 회장님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된다. 이뿐이 아니다.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도 심하다.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되면 여지없이 해외로 내뺀다. 올 국감에서도 기업인·금융인 수십명이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채택됐지만 출석한 사람은 거의 없다. 아예 국감 이전에 해외로 나가 별 볼일 없이 보내기 일쑤다. 현지 교민들은 “대한민국의 법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 민망하다.”며 탄식한다고 한다.
이들의 관심은 다른 데 있다. 오직 대물림이다. 최근 재계와 금융계 오너 또는 회장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체불명의 뭉칫돈을 굴리다 내부 직원에 의해 까발려진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은 대기업인 삼성그룹의 수법을 그대로 답습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돈인데, 증여세를 낼 테니 봐달라는 것이다. C&그룹은 옛 대우그룹처럼 부실기업을 집어삼키면서 배를 불렸다. 후계 문제에서 촉발된 태광은 현대의 글로비스처럼 단돈 5000만원으로 회사를 차려놓고 계열사들의 물량을 받아먹는 식으로 매출을 올려 이익을 남겼다. 머리 큰 동생들이 큰 형님(?)들의 좋지 못한 행태를 그대로 물려받아 경영권 승계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어미소가 볼품없다고 외면하다 세금(공적자금)으로 영양분을 공급해 키워놨더니 서로 가져가겠다고 치고받고 싸우는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의 행태도 모럴 해저드의 극치다.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사태에 이은 신한금융지주의 사태도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신한은행은 1982년 재일동포들이 가방에 엔화 뭉치를 넣고 들어와 회사를 차렸고, 불법으로 외화를 유출해온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결국 터질 것이 터진 것이지만, 라응찬 전 회장 등의 행적은 금융 후진국의 양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남보기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글로벌 시대에는 스티브 잡스 같은 글로벌 리더가 많이 나와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굴지의 글로벌기업을 많이 키웠다. 그러나 오너와 회장은 있었지만 존경 받는 글로벌 리더는 없었다. 자식에게 물려주거나 장기집권을 위해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 때문에 글로벌 리더를 키우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한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계·금융계의 얼룩진 과거와 잘못은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해주고 있다. 기회가 왔는데도 그냥 뭉개거나 액땜하듯이 넘어가면 글로벌 리더 양성은 요원하다. 기업의 목적을 주주가치의 이익 증대보다는 더 많은 고객, 행복한 고객을 확보하는 데 두는 스티브 잡스의 경영노하우를 벤치마킹해 보면 어떨까.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판 스티브 잡스가 줄이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bcjoo@seoul.co.kr
주병철 논설위원
유감스럽게도 국내로 눈을 돌리면 한국판 스티브 잡스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 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국내 굴지의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회장님을 한번 보자.
검찰 조사를 한두번 받지 않은 사람이 없고, 법정 투쟁으로 날밤을 새운다. 잊을 만하면 또다른 회장님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된다. 이뿐이 아니다.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도 심하다.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되면 여지없이 해외로 내뺀다. 올 국감에서도 기업인·금융인 수십명이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채택됐지만 출석한 사람은 거의 없다. 아예 국감 이전에 해외로 나가 별 볼일 없이 보내기 일쑤다. 현지 교민들은 “대한민국의 법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 민망하다.”며 탄식한다고 한다.
이들의 관심은 다른 데 있다. 오직 대물림이다. 최근 재계와 금융계 오너 또는 회장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체불명의 뭉칫돈을 굴리다 내부 직원에 의해 까발려진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은 대기업인 삼성그룹의 수법을 그대로 답습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돈인데, 증여세를 낼 테니 봐달라는 것이다. C&그룹은 옛 대우그룹처럼 부실기업을 집어삼키면서 배를 불렸다. 후계 문제에서 촉발된 태광은 현대의 글로비스처럼 단돈 5000만원으로 회사를 차려놓고 계열사들의 물량을 받아먹는 식으로 매출을 올려 이익을 남겼다. 머리 큰 동생들이 큰 형님(?)들의 좋지 못한 행태를 그대로 물려받아 경영권 승계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어미소가 볼품없다고 외면하다 세금(공적자금)으로 영양분을 공급해 키워놨더니 서로 가져가겠다고 치고받고 싸우는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의 행태도 모럴 해저드의 극치다.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사태에 이은 신한금융지주의 사태도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신한은행은 1982년 재일동포들이 가방에 엔화 뭉치를 넣고 들어와 회사를 차렸고, 불법으로 외화를 유출해온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결국 터질 것이 터진 것이지만, 라응찬 전 회장 등의 행적은 금융 후진국의 양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남보기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글로벌 시대에는 스티브 잡스 같은 글로벌 리더가 많이 나와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굴지의 글로벌기업을 많이 키웠다. 그러나 오너와 회장은 있었지만 존경 받는 글로벌 리더는 없었다. 자식에게 물려주거나 장기집권을 위해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 때문에 글로벌 리더를 키우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한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계·금융계의 얼룩진 과거와 잘못은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해주고 있다. 기회가 왔는데도 그냥 뭉개거나 액땜하듯이 넘어가면 글로벌 리더 양성은 요원하다. 기업의 목적을 주주가치의 이익 증대보다는 더 많은 고객, 행복한 고객을 확보하는 데 두는 스티브 잡스의 경영노하우를 벤치마킹해 보면 어떨까.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판 스티브 잡스가 줄이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bcjoo@seoul.co.kr
2010-11-0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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