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대] 자연주의라는 환상/한승혜 주부

[2030 세대] 자연주의라는 환상/한승혜 주부

입력 2018-10-04 17:06
수정 2018-10-0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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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축구선수가 출산 때 아내에게 무통주사를 맞지 말도록 권유했던 일이 며칠 전 화제가 되었다. 그는 창세기 구절을 들어 “주님께서 주신 고통을 피하지 말자”며 아내를 설득했다고 한다. 종교적 신념에 의거한 그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주신’, 즉 자연적인 아픔을 그대로 감내하자는 측면에서 자연주의 출산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한승혜 주부
한승혜 주부
자연주의 출산은 의학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출산 방식이다. 촉진제나 무통주사 등 약물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분만과정에서 열상을 방지하려고 통상 병원서 진행하는 회음부 절개도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할머니 세대의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는데,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비용은 일반 분만의 두 배 이상이 든다.

몇 년 전부터 이러한 자연주의 출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임산부 커뮤니티에 가보면 자연주의 출산에 관한 예비 엄마들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데 개중에는 관심은 있지만, 비용 때문에 고민이 된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겁이 많아 포기했다며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은 의학의 발달로 예전처럼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현저하게 줄었지만, 출산은 본래 상당한 위험을 동반한다. 그렇기에 이처럼 의료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은 산모와 아이에게 있어 목숨을 거는 행위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위험하면서 고비용이기까지 한 자연주의 출산이 이와 같이 산모들의 ‘로망’으로 자리잡은 까닭은 무엇일까.

자연주의란 말 속에는 인공적인 것은 나쁘며, 과학 등이 개입하지 않아야 좋다는 환상이 내포되어 있다. 인터넷에는 자연주의로 낳은 아이가 더 순한 것 같다거나 약물을 쓰지 않아 아기에게 스트레스 없는 출산을 하게 되어 기쁘다는 ‘간증’이 넘쳐난다. 미디어는 자연주의 출산을 한 연예인 부부를 감동 사례라며 소개한다. 이를 통해 자연주의 출산은 아이를 위한 엄마의 희생이자 노력이라는 믿음으로 자연스레 연결되고, 어느새 ‘유기농’이나 ‘천연’처럼 특별한 선택으로 자리한다. 자연주의 출산을 단순히 엄마의 욕심이나 허영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출산 방식은 출산하는 당사자가 선택할 문제이기에 타인이 임의로 금지하거나 강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자연’에 대한 무조건적 호응과 ‘인공’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탓에 산모와 아이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고통을 무리하게 견디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현실에는 문제가 있다.

진보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왔다. 막연한 믿음과 환상에 근거하여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해서는 안 된다. 아픔을 피할 수있는 방법이 있는데 일부러 견딜 이유도 없다.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 무통주사를 거부한다고 훌륭하지 않다. 출산은 극기훈련이 아니며 고통을 견디는 것 역시 모성애와 관계없다. 신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만약 해산의 고통이 하나님이 준 것이라면, 그것을 없앨 무통주사 역시 하나님이 준 것이다.
2018-10-0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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