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미국 ‘필부필부’와 나눈 5시간의 대화/김미경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미국 ‘필부필부’와 나눈 5시간의 대화/김미경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14-06-21 00:00
수정 2014-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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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정치부 차장
김미경 정치부 차장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는 대형 할인점 코스트코 주차장은 새벽부터 습한 고온으로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챙모자와 물통, 간이의자 등을 준비해온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늘어섰다. 민주당 차기 유력 대권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두 번째 회고록 ‘힘든 선택들’(Hard Choices) 출간기념 사인회를 한다는 소식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몰려든 것이다.

기자 앞에는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멘 젊은 흑인 여성이 서 있었다. 힐러리 전 장관의 회고록 5권을 사서 배낭에 넣어왔다며, 사인을 받아 식구들에게 나눠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앞에는 30대로 보이는 남녀 커플이 줄을 섰다. 기자의 뒤에는 60대 할머니 3명이 자리를 잡았고, 그들 뒤에는 중년 남성이 아이와 함께 서 있었다.

30분쯤 지났을까, 힐러리 전 장관의 대권 도전을 지원하는 풀뿌리 정치자금 모금단체 ‘레디 포 힐러리’ 회원들이 할머니들에게 다가와 지지 서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들은 “나는 힐러리가 좋아. ‘레디 포 힐러리’는 어떻게 가입하는 거냐. 후원금도 내야 하냐”며 흔쾌히 서명을 했다. 기자가 “힐러리의 어떤 면이 좋으냐”고 묻자 “경험도 많고 능력도 있고,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나은 여성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땡볕에 서서 기다린 지 1시간쯤 지나자 앞뒤에 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27세 교직원이라고 밝힌 흑인 여성은 “우리도 여성 대통령을 맞이할 때가 됐다”며 “그렇지만 이번 회고록은 외교 성과에만 치중해 대선 캠페인용으로 보여 조금 실망했다”고 말했다. 발매 1주일 만에 10만부 이상 판매됐지만 첫 번째 회고록 ‘살아있는 역사’(Living History)가 첫 주에 60만부나 팔린 것에 비하면 저조한 것이 이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중년 남성은 군인 출신 교수였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에 이어 이라크에도 더는 개입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며 “‘실패한 전쟁’을 끝내는 것은 맞지만 현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힐러리 전 장관이 대통령이 되면 더 나은 판단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할머니들 가운데 의회에서 일했다는 한 명은 미 정치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는 “에릭 캔터(공화당 하원 원내대표)가 왜 중간선거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졌는 줄 아느냐. 지역구는 안 챙기고 중앙 정치에만 치중하다가 유권자들한테 버림받은 것”이라며 “민심을 돌보지 않는 정치인은 자격이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최근 친구가 총기 사고를 당했다는 남녀 커플은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얼마나 표를 얻을 수 있을지 지켜볼 것”이라며 “공화당이 이민개혁법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20~60대 남녀노소로부터 생생한 민심을 들은 지 5시간쯤 지났을 때 드디어 힐러리 전 장관 앞에 서서 사인을 받고 악수를 나눴다. 힐러리 전 장관과의 만남은 짧게 지나갔지만 그를 지지하는 필부필부와의 5시간은 미국인들이 차기 대통령으로부터 무엇을 원하는지를 깨닫게 했다. 힐러리 전 장관도 이들의 마음을 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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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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