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숙 칼럼] ‘졸속’ 중대재해법, ‘제2의 임대차 3법’ 되나/대기자

[최광숙 칼럼] ‘졸속’ 중대재해법, ‘제2의 임대차 3법’ 되나/대기자

최광숙 기자
최광숙 기자
입력 2021-12-22 20:14
수정 2022-05-1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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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숙 대기자·공공정책연구소장
최광숙 대기자·공공정책연구소장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책으로 꼽히는 부동산 정책의 근간 중 하나인 ‘임대차 3법’은 선의에서 출발했다.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다는 좋은 취지였지만 결과는 전셋값 폭등, 전세 난민 등 부작용만 양산했다. 내년 1월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산재사고를 줄이겠다는 선의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지금 기업이나 행정 현장의 혼란을 보면 이 법 역시 엉뚱한 결과만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첫째, 이 법의 가장 큰 목적은 책임자 처벌인데 규정이 모호하고 불명확해 ‘타깃’이 분명하지 않다.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려면 구성 요건이 명확해야 한다. 혼내야 한다고 마구잡이로 감옥에 보낼 수 없는 게 법치다. 그런데 이 법은 누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우선 의무 주체인 ‘경영책임자 등’의 개념부터 혼선을 준다. 사고 발생 시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대표이사)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안전경영책임자) 중 누가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또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자’가 처벌을 받도록 했다. ‘지배·운영·관리하는 자’의 개념도 명확하지 않고, 이들이 각각 다를 경우 치열한 ‘책임회피’ 공방이 예상된다. 한 국회의원도 “‘책임 있는 자’를 그냥 ‘사장님’으로 이해를 했다”면서 “정말 법을 대충 만들었네요”라고 실토했을 정도다.

둘째, ‘지배·운영·관리하는 자’가 각각 다를 경우 산재 예방의 주체를 알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책임자 처벌도 결국 산재를 줄이자는 것인데, 그러려면 산재 예방 시스템 구축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 산재 예방을 누가 해야 하는지 불명확하다면 산재가 줄어들 리 만무다. 이 법의 모델인 법인과실치사법을 시행하고 있는 영국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전문적인 산재 예방 행정 조직을 갖추고 있어 기업들에 대해 엄벌을 내리는 효과를 충분히 거두고 있다. 예방 없는 엄벌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셋째, 법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는 기업들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법 해석이 명료하지 않으니 일단 형사처벌을 피하고 보자는 심산이다. 대기업들은 로펌의 자문을 받아 면책 서류 작업 등으로 대비한다. 반면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 등은 무방비다. 아리송한 법 규정은 결국 ‘유전무죄, 무전유죄’, ‘솜방망이’ 판결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법조계에서 “법 해석의 통일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필요한 논란만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공론화 과정도 없이 갑자기 법 적용 대상이 된 관가에도 불똥이 튀었다. 도로, 철도 등 각종 공사와 용역을 발주하는 정부 부처, 지자체, 공공기관들은 대책을 마련하느라 초비상이다. 공무원 등 소속 직원들의 과로사나 우울증, 직장 괴롭힘으로 인한 사고도 처벌 대상이다 보니 무슨 대책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넷째, 이 법으로 하청 노동자들의 보호가 강화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취약계층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자칫 일터에서 쓰러질 수 있는 고령자나 기저질환자 등의 채용을 꺼릴 수 있다. 그동안 다소 관대했던 근로자들의 산업재해 인정도 까다로워질 수 있다. 산업재해로 인정되면 책임자의 형사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중대재해법이 오히려 이들에게 ‘고통’만 가중시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법 시행 한 달여를 앞두고 이런 혼란이 벌어지는 것은 임대차 3법처럼 졸속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법들은 현장 사정을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 입법’, 전문가 경고를 듣지 않는 ‘오만 입법’이기도 하다. 영국은 법인과실치사법 제정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10여년이 걸렸지만, 우리는 이 법을 심의하는 데 불과 2주 걸렸다.

유럽의회에서는 주요 법을 만들 때 ‘사전 입법평가’를 한다. 법 제정으로 과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가 등을 사전에 꼼꼼히 점검한다. 물론 ‘사후 입법평가’도 한다. 미국은 상원·하원에 변호사 출신인 입법 전문가를 각각 50여명씩 두고 법의 실효성, 위헌 여부 등 법률적인 문제가 없는지 집중 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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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명분이 좋으면 공장에서 빵 구워 내듯 법의 효과 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사천리로 법을 통과시킨다. 지킬 수 없는 얼치기 법으로는 문제 해결을 할 수 없다. 진정 약자를 위한다면 중대재해법을 손봐야 한다.
2021-12-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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