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
바이런의 무모한 도전 덕분에 오늘날 올림픽 종목에 수영이 포함됐다. 바이런도 생전에 자신의 가장 큰 성취는 (시가 아니라!) 다르다넬스 해협을 헤엄친 일이라고 자랑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다리를 약간 절던 그는 땅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누리며 거친 물살을 갈랐을 게다. 1810년에 4㎞를 1시간 10분 만에 헤엄쳤다고 하는데, 그로부터 200년 뒤인 2010년에 바이런을 흠모하여 폭이 5㎞인 다르다넬스 해협 횡단에 참여한 139명의 젊은이 중 최단기록은 1시간 27분이었다. 바이런은 수영뿐만 아니라 권투와 승마에도 능한 스포츠맨이었다.
바이런을 말하려면 하루 종일 떠들어도 모자란다. 그는 블레이크의 뒤를 이어 영국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철학자이며(바이런은 버트런드 러셀이 저술한 ‘서양철학사’에 당당히 한 장을 차지한다), 당대 최고의 유명인사였고, 가는 곳마다 스캔들을 남긴 바람둥이였고, 그를 본 여자들은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운 외모의 매력남이었고, 매일 밤 머리에 컬을 고정시키는 종이를 붙이고 잠을 자는 멋쟁이였고, 러다이트 운동을 열렬히 옹호한 사회개혁가였고, 그리스의 독립을 위해 직접 총을 든 영웅이었다. 그리스·터키 전쟁에 참전해 얻은 열병으로 36세에 죽음으로써 바이런의 신화는 완성됐다.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해협을 헤엄친 뒤에 영국으로 돌아온 바이런을 하루아침에 유명인사로 만든 시집,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에 실린 ‘이네즈에게’(To Inez)를 감상하며 바이런 찬사를 끝맺어야겠다.
아! 나는 다시 웃을 수 없으니.
그러나 하늘이 그대에게서 울음을 거두어 주기를,
아마도 헛된 눈물일 테지만.
즐거움과 청춘을 녹슬게 하는 어떤 내밀한 고뇌를
내 가슴에 감추고 있냐고 그대는 묻는가?
그대도 달랠 수 없는 이 깊은 고통을
알려고 헛되이 애쓰지 마세요.
나의 현재 상태를 견디지 못해,
내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것에서 날 떠나게 하는 것은
사랑도 미움도 아니지요.
천한 야심이 얻은 명예를 잃어서도 아니지요.
내가 만나고, 듣고 본 모든 것에서부터
솟아난 권태 때문입니다.
어떤 미인도 날 즐겁게 하지 않으니;
그대의 눈도 나를 매혹하기 힘들지요.
……(중략)
저주스런 추억 가득 안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야 하는 나;
내가 아는 유일한 위안은,
무슨 일이 일어나건, 이미 내가 최악(最惡)을 경험했다는 것.
그 가장 나쁜 일이 무엇이냐고 묻지 마세요-
연민이 있다면 알려고 하지 마세요.
남의 마음속을 들춰서
거기 있는 지옥을 엿보려 하지 말고, 다만 미소를 보내주세요.
Nay, smile not at my sullen brow,
Alas! I cannot smile again:
……(중략)
It is not love, it is not hate,
Nor low Ambition’s honours lost,
That bids me loathe my present state,
And fly from all I prized the most:
It is that weariness which springs
From all I meet, or hear, or see:
To me no pleasure Beauty brings;
Thine eyes have scarce a charm for me.
……(중략)
Through many a clime ‘tis mine to go,
With many a retrospection curst;
And all my solace is to know,
Whate’er betides, I’ve known the worst.
What is that worst? Nay, do not ask -
In pity from the search forbear:
Smile on--nor venture to unmask
Man’s heart, and view the hell that’s there
*
아, 바이런. 저주받은 시인이여. 이런 노티 나는 시를 썼을 때 그의 나이 겨우 스물두 살이었으니. 바이런의 생몰 연대를 확인하고 나는 한숨짓는다. 이토록 깊은 회한을,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는 고뇌를 이십대에 이미 알았으니 서른여섯 살에 낯선 땅에서 죽을 수밖에.
2016-08-25 2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