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낮은 곳을 향하여/배종하 주베트남 FAO대표

[글로벌 시대] 낮은 곳을 향하여/배종하 주베트남 FAO대표

입력 2014-06-23 00:00
수정 2014-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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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하 주베트남 FAO대표
배종하 주베트남 FAO대표
다산(茶山) 정약용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역설했다. “벼슬살이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자뿐”, “백성을 두려워하라”, “수령은 객(客)이요 백성들은 주인”이니 백성 보살피기를 아픈 사람 돌보듯 하라”, “백성의 뜻이 통달하여 막힘이 없어야 백성의 부모라 할 수 있다”면서 수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백성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목민관은 검소하고 청렴해야 하며 백성의 아픔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불의가 생기지 않도록 늘 살피며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각오로 일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다산은 백성의 어려움을 구제하는 데 힘쓰는 것이 공직자의 최우선 도리임을 강조했다. 다른 말로 한다면 공직자들은 ‘낮은 곳을 향하여’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 속에서는 ‘낮은 곳을 향하여’ 일하는 게 쉽지 않다. 권한은 위에 몰려 있고 중요한 결정이 일방적으로 위에서 이뤄진다면 조직원들은 ‘높은 곳을 향하여’ 일할 수밖에 없다. 모든 잣대는 윗사람의 생각, 행동에 맞춰지고 그를 편하고 기분 좋게 하려고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할 게다. 세월호 사건에서 드러난 허술한 관리, 책임감 없는 행동들이 우리 사회에 이런 풍토가 만연돼 있음을 보여준다.

높은 곳을 향하면 당연히 낮은 곳에 대한 관심은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낮은 곳의 목소리는 외면하게 되고 손길이 미치지 못한다. 낮은 곳을 살피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런 사고는 또 일어날 것이다. 사고가 터진 후에 잘못된 것들을 고친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고 근본적 틀이 바뀌지 않는 한 소용없는 짓이다. 낮은 곳을 향하려면 높은 곳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이란 누구나 편하고 싶고 자기를 편하게 해주거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 한 번 더 눈길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다 보니 늘 근처에서 필요할 때 달려와 줄 수 있는 사람,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헤아려 알아서 처리해주는 사람이 예뻐 보이고 떡이라도 하나 더 주고 싶다. 그러나 높은 사람이 편해지려고 하면 여러 낮은 사람이 힘들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감수하면 여러 사람이 수월해진다. 높은 곳에서 요구 사항이 많아지면 낮은 곳으로 가는 손길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낮은 곳을 보면서 일하다 보면 더러 높은 곳의 생각과 다르게 일이 돌아가기도 한다. 이때도 높은 곳에서는 명백한 잘못이 아닌 이상 받아줄 줄 아는 넓은 아량을 가져야 한다. 지시와 어긋난다고 닦달하면 조직은 경직되고 창의성은 사라진다. 높은 곳의 눈치만 보게 되면 낮은 곳의 사정은 무시되고 이는 불신의 근원이 된다. 복지부동이 왜 생겨나는가? 괜히 나서다가 높은 곳의 뜻에 어긋나 화를 당하기보다는 가만히 있는 게 나으니까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높은 곳만 쳐다보는 행태로 인해 고위직 인사 때마다 청와대나 권력 실세와 관련된 소문들이 떠돈다. 물론 그중엔 확인되지 않은 얘기들도 있고 추측이 사실처럼 떠돌아다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세상에 오래가는 비밀은 없는지라 시간이 지나면 사실들이 드러나게 되고, 개중에는 소문인 줄 알았던 얘기들이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도 많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평가받는 세상이 돼야 한다. 다산이 살던 시대는 물론이고 지금도 그런 세상이 올 가능성은 요원해 보이지만 그런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만 해도 세상은 변해 갈 것이다.
2014-06-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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