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리 총리가 종횡무진 성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은 뛰어난 고문 실력 덕분이다. 그는 중학생 시절 문화혁명으로 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안후이(安徽)성 고향 집에 머물며 국학대사(國學大師) 리청(李誠)을 사사해 고금의 시와 고전을 섭렵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연초 반부패와 관련해 “독을 빼내기 위해 뼈를 깎아내다’(刮骨療毒), ‘장사가 (독사에 물린)손목을 잘라낸다’(壯士斷腕)는 성어를 곁들여 결연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괴롭히는 ‘이지메 언어’를 쓴다. 그는 한마디 할 때마다 국제사회의 돌팔매 맞을 일만 골라서 한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잘못된 사실을 나열해 일본을 비방 중상하는 것에는 사실로 냉정히 반론하겠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미국인이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경의를 표하는 것과 같다.”, “(일제 침략과 식민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침략 정의는 학술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침략의 정의가) 다르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 사형 판결을 받은 사람”, “한국은 어리석은 국가”, “박근혜 한국 대통령 옆에는 간신이 있다.” …. 잊을 만하면 두더지처럼 불쑥 고개를 내밀고 이웃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박박 긁어대는 망언을 내뱉는 게 그의 특기일 정도다.
언어는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한다. 은연중에 마음속을 밖으로 드러낸다는 얘기다. 마음속이 부드러우면 언어도 부드럽고, 마음속이 거칠면 언어도 거칠게 마련이다. 특히 국가 지도자의 언어에는 부드러움에다 진정성과 책임감까지 담겨 있어야 한다. 산속의 모난 돌을 동글고 고운 조약돌로 변신시켜주는 것은 날카로운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시냇물이라는 사실을 아베는 알기나 할까.
khkim@seoul.co.kr
2014-04-08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