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비디오 판독/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비디오 판독/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14-03-27 00:00
수정 2014-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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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지난주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한국인 투수 류현진은 흥미로운 체험을 했다. 1사 2, 3루의 위기에서 외야플라이가 나왔으나 3루 주자가 홈에서 태그아웃되면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쳤다. 그러나 상대편 감독의 요청에 따라 비디오 판독이 이루어졌고, 홈에서 태그가 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이에 주심은 즉각 판정을 번복해 득점을 인정했다. 비디오 판독이 아니었다면 류현진은 그 이닝을 무실점으로 마쳤겠지만, 그만 1실점을 한 채 2사 3루 상황에서 계속 수비에 임해야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올해부터 다양한 상황에 대해 비디오 판독을 허용하도록 규정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비디오 판독을 처음 도입한 2008년에는 홈런 여부에 대해서만 허용했고, 나머지 사안에 대해서는 심판의 판정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오심은 끊이지 않았고, 그만큼 승부의 공정성은 훼손됐다.

이에 올해부터 비디오 판독을 정식으로 규정에 넣었다. 물론 아직도 스트라이크·볼의 판정과 태그에 의한 아웃·세이프 판정은 심판에게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고 있지만, 경기 중에 흔히 일어나는 여러 상황에 대해서 비디오 판독을 제한적으로 인정했다. 미식축구에서 시행하는 비디오 판독 범위에 비하면 아직 일천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번 새 규정은 객관적 사실을 최대한 경기에 반영함으로써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의지에 따른 개혁의 결과다.

이 새로운 규정에 따른 판정번복으로 류현진은 1실점을 기록했으나, 홈에서 태그가 안 된 것이 객관적 사실이기에 아무런 항의도 할 수 없었고, 특별한 불만도 표하지 않았다. 비디오 판독 때문에 자신의 첫 판정이 오심이었음이 드러난 심판도 특별히 불쾌해하지 않았다. 객관적 사실 앞에서는 누구도 자기주장만 고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인의 큰 사랑을 받으면서도 심판의 권위를 내세우며 보수적으로 일관하던 축구계도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고 있다. 영국은 이미 비디오 판독 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며, 독일은 반대 의견이 많아 시행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시행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하지만, 기술적인 문제까지 더해져 아직은 계속 논란 중이다. 그렇지만 세계축구연맹은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골인 여부에 대해서는 비디오 판독을 도입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올해 열리는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비디오 판독을 실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추세는 계속 이어져 앞으로 더 많은 스포츠 종목에서 더 자유롭게 비디오 판독 제도를 시행할 것이다. 인류는 최대한 공정하고 사실에 근거해 판단을 내리는 행위에 대해서만 진정한 권위를 인정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분명한 오심을 단지 심판의 권위라는 명분만으로는 고집할 수 없다. 오심에는 반드시 피해자가 있게 마련인데 그 피해자는 당연히 억울해한다. 누군가의 억울함을 짓누름으로써 유지되는 권위는 더 이상 권위가 아니라 더러운 권력일 뿐이다.

국정원의 문서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과연 어느 정도 진실을 사실 그대로 파헤칠지 궁금하다. 꼬리 자르기 식으로 끝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런 행태를 지겨우리만치 보았기 때문이다. 요즘 왠지 모르게 비디오 판독 제도가 자꾸 머리에 맴돈다.
2014-03-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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