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영 국제부 기자
우리로 치면 ‘도시형 생활주택’에 해당할 15㎡ 규모의 스튜디오(원룸)로 월세가 1000유로(145만원)에 육박했다. 그렇지 않아도 물가 비싼 파리에서 집세 때문에 공부가 더 힘들다고 그는 하소연했다.
파리에는 시테(CITE)라는 대학기숙사촌이 있다. 40여개 나라가 각자 국가관을 만들어 자국 학생 1만여명을 수용하고 있다. 우리보다 국력이 떨어지는 쿠바나 가나도 이곳에 학생관을 지었다. 일본은 거의 한 세기 전인 1920년대에 학생관을 세웠다.
안타깝게도 한국 유학생들은 남의 나라 학생관의 빈방에 들어가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내 친구처럼 엄청난 돈을 내고 시내에 방을 구해야 한다. 파리 한국 유학생들의 바람은 한결같았다. 하루빨리 한국관이 지어져 저렴한 생활비로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다.
2011년 한·불 정상회담 당시 니콜라 샤르코지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시테 지역의 토지를 줄 테니 한국관을 지으라는 것이었다. 자국 학생관을 갖지 못한 수많은 나라들의 요청을 물리치고 한국에만 제공한 특혜였다. 이 대통령은 이를 흔쾌히 수락하며 국격 상승의 쾌거로 치켜세웠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터에는 벽돌 한 장 올라가지 않았다. 한국관 건립 비용(400억원 안팎)이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은 “한국에서 학생관을 지을 마음이 없다”고 비웃으며 자신들에게 그 땅을 달라고 프랑스에 매달리고 있다.
400억원이라는 돈이 선진 20개국(G20) 국가를 자처하는 나라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 대통령과 한 약속을 못 지켜 웃음거리가 되는 상황을 감내해야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다. 최근 프랑스를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도 한국관 건립에 좋은 소식을 주겠다며 교민들에게 약속했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유학생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약속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는 박 대통령은 한국관 건립 약속을 꼭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superryu@seoul.co.kr
2013-12-0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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