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형 사회부 기자
보기 중 분류상 다른 기관은 무엇일까. 정답은 4번 한국방송공사다. 1, 2, 3번에 해당하는 기관들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상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인사와 예산, 평가 등에서 동일한 규정을 적용받는다. 한국방송공사는 방송법의 적용을 받는다. 다음 질문. 전화친절도를 포함한 고객만족도 조사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기관은 어디일까. 정답은 1, 2, 3번이다. 이쯤 되면 의문점이 생길 만하다. 나로호를 만들고, 달 탐사를 하는 항우연은 왜 강원랜드나 정동극장과 동일한 평가와 규제를 받고 있는 것일까.
지난 7일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25개 정부출연연구소가 모여 ‘출연연 개편안’을 발표했다. 과학계 안팎의 시각은 다양하다. 출연연들은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출범 이후 처음으로 마련한 자구책이라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조조정을 겪었던 출연연들이 ‘현상 유지’를 위해 자구책으로 선수를 쳤다는 삐딱한 시선도 있다. ‘융합연구 강화’, ‘서랍 속 기술 활성화’ 등 개편안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체화될지는 미지수다. 머리가 25개인 출연연이 함께 산으로 갈 가능성도 높다.
정작 기자의 주목을 끈 것은 출연연의 대정부 요구사항이었다. 출연연들은 ‘기타 공공기관 해지’를 주장했다. 기타 공공기관 지위가 출연연 발전의 족쇄가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획재정부의 분류에 따른 정부공공기관 286개 중 기타 공공기관은 176개다. 강원랜드, 정동극장뿐 아니라 국립대 병원들과 과학기술 관련 출연기관 전체가 한 덩어리로 묶여 있다.
기타 공공기관은 규제가 많다. ‘신의 직장’이라는 비판을 감안해 2010년 공공부문 학력 규제가 폐지됐고, 대졸 초임은 삭감됐다. 예산 운용과 인력도 최소화해야 한다. 우수인력을 끌어모아야 할 출연연에 대졸 초임 삭감이나 학력 규제 폐지는 치명적이다. 연구인력을 배정받지 못하다 보니 비정규직이 양산된다. 안정적인 일자리도, 높은 연봉도 보장하지 못하는 출연연은 대학교수와 기업연구원에 밀려 기피대상이 된 지 오래다. 기타 공공기관은 매년 고객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순위도 매겨진다.
항우연과 원자력연구원의 고객은 누굴까. 매년 출연연에서는 고객만족도 조사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외부연구자들을 상대로 전화친절도를 억지로 조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인력과 시간 낭비일 뿐이다. 정부 예산을 받는 출연연에 예산 낭비와 과다한 인력 등에 대한 규제는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 편의에 따른 획일적이고 적절하지 않은 분류가 비효율로 이어지고 있다면 개선이 필요하다. 출연연은 변해야 하고, 스스로 이를 절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만들어 놓은 칸막이는 치워줘야 하지 않을까. 정부는 한국방송공사, 금융감독원은 독립성과 자율성 부여를 위해 기타 공공기관의 족쇄를 풀어줬다. 서울예술단, 국립합창단, 국립오페라단 역시 예술창작 활동의 특수성을 감안해 지정이 해지됐다. 과학의 특수성도 살펴봐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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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0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