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에 가담한 군인 49명은 당일 체포되어 구속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석방되었다. 박정희는 5·16으로 권력을 장악한 뒤 정치에 참여하지 말고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았다. 결국, 1963년 2월 박정희는 민정에 참여하지 않고 군은 중립을 지키겠다는 선언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지못해 한 것이었다. 그리고 보름 남짓 지나 군인들이 데모를 벌이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박정희는 겉으로는 데모를 한 군인들을 엄중히 다스리라고 지시했지만 속으로는 좋아했을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군인 데모가 있은 바로 다음 날 군정 연장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며 중립 선언 약속을 파기하고 말았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2013-04-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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