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로는 성남시의 모체가 된 ‘광주 대단지’와 관련이 있다. 1968년 무렵 서울시는 빈민가를 정비하여 철거민을 이주시키는 대책으로 1969년 4월부터 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대에 주택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서울시의 이주 정책으로 광주 대단지의 인구는 1969년 말 3만 5000여명, 1970년에는 9만 6000여명, 1971년에는 15만여명으로 급증했다.
그런데 광주 대단지 주민들의 일터는 거의 서울에 있어서 서울로 출퇴근해야 했는데 교통이 큰 문제였다. 서울에서 대단지로 가려면 천호동으로 가서 걸어서 갈 수밖에 없었다. 천호동에서 대단지까지는 비포장도로가 있었는데 서울시는 이 도로를 포장해서 버스가 다니도록 했지만, 서울 시내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 대안으로 만든 도로가 바로 대곡로였다. 대곡로가 개통될 즈음 강남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한강 다리도 여러 개 만들어 대단지 주민들의 서울 접근성을 높여 주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2013-03-2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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