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과학의 조건/심재억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과학의 조건/심재억 전문기자

입력 2013-02-07 00:00
수정 2013-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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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불행은 주로 권력의 강박에서 비롯된다. 강박은 권력의 셈법으로 도출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다. 성과 독점과 권력 유지 등 정치적 이용가치만을 따질 뿐 과학을 과학으로 이해하지 않는 탓이다. 권력 강화를 위한 디딤돌로 삼든가, 과학의 성과 뒤에서 과학과는 전혀 다른 계산을 할 뿐이다. 여기에 돈(예산)이 결부되면 강박은 집착으로 돌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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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억 전문기자
심재억 전문기자
과학은 인간과 문명에 헌신하는 수많은 체계 중에 가장 위력적이고 존엄한 분야다. 그래서 과학정책은 더 엄중해야 한다. 물론 과학이 항상 선을 지향했던 것은 아니다. 전쟁에 부역해 문명의 가치를 훼손했는가 하면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소품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과학의 가치중립적 특성이 대중을 설득하기에 용이할 뿐 아니라 대중의 심리를 격발하는 촉매로도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과학이 과학 밖의 다른 힘에 의해 재단되던 시절, 과학은 발전했지만 진보하지 못했다.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권위주의 시대는 과학을 정치적 이해로만 재단했다. 심장이 식어버린 과학은 권력의 지침에 순종했고, 과학자들은 항상 ‘국가’와 ‘애국’의 무게에 짓눌렸다. 과학의 본질이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그 시절, 과학은 절대권력을 옹위하는 홍위병의 깃발 하나일 뿐이었다. 그 시절의 한국 과학은 확실히 불행했다.

지금은 어떤가. 나라가 부산하다. 정권 교체기의 변혁이 소용돌이치는 까닭이다. 그 중심에 ‘미래창조과학부’가 있다. ‘과학기술’을 ‘교육’과 얽어매 반편이로 만든 MB 정권의 과학에 대한 몰이해를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온갖 역할과 기능을 다 그러모았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이다. 승냥이떼처럼 과학을 뜯어 발긴 탓이다. 과학의 본산인 대학과 불가분의 관계인 산학촉진법과 산학 연계사업이 그렇고, 기초연구사업이 그렇다. 신성장동력사업과 원자력 비발전 분야 관련법은 또 어떤가.

그러면서도 미래창조과학부는 비대하다. 과학자들조차 “MB 정권 때와는 반대의 시각에서 우려된다”고 토로할 정도다. ‘과학을 권력의 자장(磁場) 속으로 너무 깊숙이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을 관장하는 부처의 영지가 확대되고, 그래서 과학을 할 토양은 척박한데 힘만 커지는 상황은 과학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 될 뿐이다.

과학으로 미래를 열겠다는 새 정부의 발상은 옳다. 그러나 과학을 과학으로 보지 않는 퇴행적 관료주의가 이런 정신을 위험하게 흔들어대고 있다. 아직도 과학을 부처 간 힘겨루기의 전리품으로 간주하는 관료주의의 병폐가 ‘미래’와 ‘창조’를 잠식하고 있다. 새 정부가 과학을 말하려면 지금은 물론 이후에도 지속가능한 토대를 닦는 게 우선이며, 그 시작은 먼저 관료주의적 안배의 배제에 둬야 한다. 그래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학이 ‘시대정신’의 희생제의가 되지 않는다. 구미 제국을 과학 강국으로 키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상기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학을 할 수 없는 부처를 만들어 놓고 함부로 ‘미래’와 ‘창조’를 말하는 것은 누가 봐도 구두선(口頭禪)일 뿐이다.

jeshim@seoul.co.kr

2013-02-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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