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생고무표’ 만리장성/구본영 논설위원

[씨줄날줄] ‘생고무표’ 만리장성/구본영 논설위원

입력 2012-06-08 00:00
수정 2012-06-08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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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지구상 유일 인공 구조물” 만리장성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표현한 수사다. 몇 년 전까지 중국 여행 사이트와 교재에도 실렸다던, 중국식 과장법의 백미다. 중국 최초의 우주인 양리웨이가 “안 보인다.”고 진실을 알릴 때까지 통용되던 현대판 ‘신화’였다.

중국 당국이 만리장성의 길이를 또 크게 늘렸다. 중국 국가문물국 측은 “2007년부터 진행한 조사 결과 만리장성의 총길이가 2만 1196.18㎞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중국 당국은 2000년대 중반까지 6300㎞라고 하더니 2009년 이미 8851㎞로 늘려 발표한 바 있다. 중국 거리 단위로 10리는 5㎞이기 때문에 그제 발표 내용대로라면 이제 만리장성은 4만리 장성으로 고쳐 불러야 할 판이다.

중국 당국은 유적 조사와 측량의 결과라며 이번에 기존 장성의 끝단을 좌우로 잡아당겨 길이를 늘렸다. 장성의 동쪽 끝은 지린(吉林)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까지 확장했다. 그 의도는 뻔하다. 옛 고구려와 발해가 지은 성까지 만리장성의 한 자락이라고 강변하려는 것이다. 중국 측은 2009년에는 장성의 동쪽 기점이 랴오닝(遼寧)성 단둥시 북쪽의 박작(泊灼)성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에도 고구려식 우물터가 발견된 고증을 무시하고 역사를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황허 문명의 발상지 중국이 인류 문명사에 끼친 공적은 누가 뭐래도 부인하기 어렵다. 나침반·화약·종이 등 고대 세계 3대 발명품을 내놓은 나라가 아닌가. 이민족에게 중원을 내줄 때도 많았지만, 인구의 대다수를 점하는 한족이 갖고 있는 중화(中華) 자부심의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재청에 해당하는 중국 국가문물국의 행보는 문화 혹은 문명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마오쩌둥 치하의 ‘문화혁명’도 이름과 달리 인민을 도탄에 빠뜨린 야만적 사건이었다. 1966∼1976년 홍위병의 광기 속에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고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택하면서 현대 중국은 비로소 긍정적 역사 발전을 일궈 왔다. 하지만 동북공정이니 서북공정이니 하는 역사 왜곡은 문명사의 물길을 다시 거꾸로 돌리는 행위일 게다. 탄성계수 100% 생고무처럼 만리장성의 길이를 늘린다고 역사의 진실이 달라지겠는가. 중국 당국은 “역사는 두번 되풀이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소극(笑劇)으로”라는 속설을 음미했으면 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2012-06-0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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