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서열/곽태헌 논설위원

[씨줄날줄] 서열/곽태헌 논설위원

입력 2012-05-18 00:00
수정 2012-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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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헌법 제66조 제1항에는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元首)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는 조항이 있다. 제66조 제4항은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는 내용이다. 대통령제 국가인 한국의 의전서열 1위는 당연히 대통령이다. 2위는 국회의장, 3위는 대법원장, 4위는 헌법재판소장, 5위는 국무총리, 6위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 7위는 감사원장이다. 헌법과 정부조직법 등을 기초로 한 것이지만,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행사의 성격에 따라 다소 차이도 있다.

지난주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권력서열 4위인 ‘왕차관’(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구속됐고 권력서열 3위인 ‘방통대군’(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이미 구속됐다.”면서 “이제 권력서열 1위인 형님(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2위인 이명박 대통령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두려운 마음으로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의전서열과는 다른 실제 파워를 나타내는 권력서열을 나름의 판단에 따라 내린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권력서열 2위로 밀린 것은 그만큼 ‘만사형통’으로 불린 이명박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파워가 세다는 뜻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부통령’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권력서열 2위로 통했던 박 원내대표가 현 정부의 권력서열을 거론한 것도 아이러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의전서열은 있지만, 권력서열은 있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3권분립에 따라 견제와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공식적인 기구와 기관·직위를 근거로 서열이 정해지고 역할을 해야 하는 곳에서 권력서열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많다는 뜻이다. 박 원내대표의 말이 100% 맞지는 않다고 해도,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박영준 전 차관처럼 현 정부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한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다.

북한이나 중국과 같은 곳에는 권력서열, 당서열이 공식화돼 있다. 북한의 경우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따라 구성된 장의위원회 명단이나, 지난달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 때의 주석단 명단 등 중요한 행사 때 발표되는 순서를 통해 권력서열을 알 수 있다고 한다. 10월로 예정된 중국 18차 당 대회를 앞두고 권력서열을 알 수 있는 정치국 상무위원 후보 명단이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오는 12월 19일 대통령선거 이후 들어설 차기 정부에서는 권력서열이라는 말만 나오지 않아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 않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2012-05-1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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