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우울증/임태순 논설위원

[씨줄날줄] 우울증/임태순 논설위원

입력 2012-04-23 00:00
수정 201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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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한적한 어촌에 사는 어부가 먹을 만큼의 고기를 잡은 뒤 콧노래를 부르며 집에 가고 있었다. 관광 온 미국인 투자전문가가 어부에게 “부자가 되게 해줄 테니 앞으로 고기를 더 많이 잡아 오라.”고 제안했다. 부자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니 미국인은 멋진 해변가에 가서 낚시도 하면서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이에 멕시코 어부가 그 삶이나 지금의 삶이나 뭐가 다르냐고 반문하자 미국인은 아무런 말도 못했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우리나라 부모들만큼 ‘다음’ 또는 ‘내일’을 중시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자녀들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면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지금보다 대학가기 전인 고등학교 성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힘들게 공부해 세칭 명문대에 진학하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다. 이젠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 결혼하면 알뜰살뜰 모아 집을 장만해야 하고 다시 자녀들을 좋은 학교로 보내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인터넷 교육방송에서 들은 이야기이지만 공감이 가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오늘은 없고 내일만 바라보는 이러한 삶의 자세는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서울 서초·강남·양천 등 이른바 ‘명품학군’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우울증 비율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우울증을 겪는 학생은 1000명당 서초구 7.4명, 양천구 7.2명, 강남구 6.8명으로 서울시 평균(5명)을 웃돈 것은 물론,종로(2.9명), 중구(3.4명), 동대문구(3.9명)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전문가들은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학업 스트레스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 보장으로는 교육만 한 게 없겠지만 교육으로 인해 자녀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부모들은 등골이 휜다면 우리 모두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반면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25위로 바닥권일 정도로 지독한 모순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다. 자녀들을 위해 연간 20조원의 사교육비를 쓰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히고 있으니 부모들이 행복할 리 없다. 대한민국에서 기독교, 불교 등 종교가 성행하는 것도 오늘보다도 내일, 내세를 생각하는 국민들의 삶의 자세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젠 삶의 자세가 오늘, 현재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는 미래를 위한 준비기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now&here)에 충실하고 몰두해야 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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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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