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소통 외면한 ‘개혁의 아이콘’/박건형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소통 외면한 ‘개혁의 아이콘’/박건형 사회부 기자

입력 2011-10-14 00:00
수정 2011-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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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형 사회부 기자
박건형 사회부 기자
2004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에 로버트 로플린이 취임했다. 학문의 정점에 있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였다. KAIST를 바꾸겠다는 의욕이 넘쳤다. 일각에서는 ‘대학가의 히딩크’라고 불렀다. 하지만 실패자로 기록됐다. 종합대학화와 사립화까지 외친 로플린은 KAIST의 이방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독재자라는 비판도 받았다. 결국 전체 교수의 89%가 퇴진을 요구했고, 로플린은 임기 절반을 남긴 채 물러났다.

서남표 총장이 그의 뒤를 이었다. 전임자의 사례에서 많은 것을 배운 듯했다. 개혁이라는 지향점 아래 소통을 시도했다. “KAIST를 매사추세츠공대(MIT)로 만들자.”는 명분에 젊은 교수들은 앞다퉈 손을 내밀었다. 서 총장은 힘을 얻었다. 수업료 차등, 전면 영어수업, 테뉴어 심사 강화 등을 관철시켜 나갔다. 로플린이 시도하다가 수포로 돌아간 정책들이었다. 서 총장은 개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소통에 소극적이 됐다. 일방적으로 정책들이 발표됐고, 반발은 묻혀졌다. 급기야 올 초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했다. 서 총장은 눈물까지 보이며 구성원들을 달랬다. 하지만 고비가 지나자 약속에 핑계를 대며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달 KAIST 교수들은 5년 만에 다시 ‘총장 퇴진’을 묻는 투표에 들어갔다. 학생들도 동참했다.

서 총장은 그제야 대학평의회를 만들겠다며 수습에 나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절대 불가’ ‘권한 밖’이라고 주장하던 터다. 로플린과 서 총장의 성적표가 다른 이유는 ‘소통’에 있었다. 서 총장이 신뢰를 잃었다는 것은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잃었다는 말과 같다. 요구사항을 마지못해 하나씩 들어주는 방식으로 신뢰는 회복되지 않는다. 서 총장의 진정성을 담은 태도와 자세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총장의 특허보유 논란이나 대학재정의 펀드 손실 문제도 쉬쉬할 일이 아니다. 개혁의 아이콘이 소통 부재의 아이콘으로 전락하는 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 일이다. KAIST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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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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