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크레인 시위/주병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크레인 시위/주병철 논설위원

입력 2011-08-01 00:00
수정 2011-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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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발전은 인류의 세금 투쟁 성과라는 말이 있다. 영국의 대헌장과 권리청원, 명예혁명, 미국의 건국, 프랑스 대혁명 등 역사상 중요한 인권 투쟁 기록은 결국 세금 투쟁의 기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 속 세금’ 얘기를 할 때 11세기 영국 중부지방의 코벤트리(Coventry) 레오프릭 영주의 부인 고디바(Godiva)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남편이자 영국 4개 백작령 중 하나인 머시어의 통수권자인 레오프릭에게 농노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세금을 낮춰 달라고 간청했다.

바이킹계 왕인 커누트의 ‘무리한’ 세금징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레오프릭은 부인의 닦달에 “당신이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응수했다. 그런데 고디바 부인이 진짜 알몸시위에 나선 것이다. 당시 농노들은 고디바의 마음에 감동해 그가 영지를 돌 때 집집마다 문과 창을 걸어잠그고 커튼을 내려 부인의 희생에 경의를 표했단다.

이후 남의 이목을 끄는 강렬한 항의의 수단인 알몸시위는 모피 반대 시위, 석유 의존 반대 자전거 시위, 일자리 요구 시위, 낙태 합법화 지지 시위, 반세계화 시위 등 여성이 참가하는 시위에 적잖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섬뜩한 게 골리앗 크레인 시위다. 힘없는 자가 힘있는 자와 싸워서 이겼을 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말하는 데서 따왔다. 수치심을 느끼는 알몸시위와 달리 극단의 생명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시위자의 절박함 못지않게 지켜보는 이들의 간담이 서늘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알몸시위보다는 크레인 시위가 많았고 효과도 컸다. 지난 3월 대우조선 비정규직이 송전탑에 올라 88일을 살았고, 2008년에는 기륭전자 유모씨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16m 높이의 서울시청 조명탑에 올랐다. 1990년에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100m 골리앗 크레인에 올랐다. 대부분 시위는 성과를 얻고 끝났다. 지금까지 크레인 시위자는 100명가량 된다고 한다.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 김진숙씨가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크레인 시위를 벌인 지 어제로 206일째가 됐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외치고, 지난해 주요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러 국제무대에 우뚝 섰다는 우리에게는 참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노사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빨리 문제를 매듭지었으면 한다. 국민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크레인 시위도, 해외로 떠난 사측 대표자의 시위 아닌 시위도 보기가 안쓰럽다. 언제쯤이면 이런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될까.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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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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