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窓] 교육과 불만 공화국/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생명의 窓] 교육과 불만 공화국/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입력 2011-04-23 00:00
수정 2011-04-23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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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누구보다도 배우기를 좋아했다. 이른바 그의 ‘호학’(好學) 정신이다. “열집이 사는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신의와 충절을 지키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不如丘之好學)이라고 했다. 배우는 것이 좋아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심지어 몸이 늙어가는 것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한 가지 예로 주역(周易)을 좋아하여 열심히 읽느라 책을 매고 있던 가죽끈이 세번이나 끊어질 정도였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다. 공자는 또 “알기만 하려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之者)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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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무슨 일을 하는데, 그 일 자체가 좋아서 즐겨 하는 것과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있다. 좋아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은 신이 나서 하게 되지만, 해야 되기 때문에 억지로 하게 되면 신명나게 할 수가 없다. 같은 소설책이라도 자기가 좋아서 읽게 되면 한자리에서 다 읽게 되지만, 학교 숙제로 읽어야 한다면 계속 남은 책장을 세며 읽게 된다.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막 끝내고 공부를 하려는데, 엄마가 들어와 공부하라고 소리치면 공부하려던 마음이 싹 가신다. 신나게 하던 일마저도 멍석을 깔아주고 하라고 강권하면 할 맛이 사라진다.

피아노 배우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한 아이가 집에 새로 들여온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보니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이쪽저쪽 건드리니 각각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했다. 계속 피아노를 치다가 보니 간단한 노래도 칠 수 있게 되었다. 신이 났다. 그러자 어머니가 바이엘·체르니 교본도 사주고, 선생님도 붙여주며, 피아노를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워 보라고 한다. 전보다 더 잘 치게 되고 더 즐겁다.

그러다가 동네 피아노 콩쿠르가 있으니 나가 보겠느냐고 한다. 일등을 해도 좋고 일등을 하지 않아도 좋다. 피아노 치는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고, 피아노를 더 잘 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서 좋다. 일등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 피아노를 신나게 치며 즐기는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만족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즐기다가 저절로 실력이 점점 좋아져 결국 훌륭한 음악가가 된다. ‘스스로 동기가 유발된’(intrinsically motivated) 경우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 아이는 엄마의 강권에 의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엄마는 딸이 피아노를 쳐서 동네 콩쿠르에서 일등을 하면 딸의 장래에도 좋고, 자기의 자존심에도 보탬이 된다고 생각해서 딸에게 피아노를 시킨다. 딸은 피아노가 별로였지만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열심히 연습한다. 엄마가 옆집 아이를 보라고 다그치기에 옆집 아이보다 더 연습을 많이 해서 꼭 그 아이를 이기고 콩쿠르에서 일등을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동네 콩쿠르에서 일등을 하지 못했다. 너무 분하고 슬프다. 그동안 죽으라고 피땀 흘려 연습한 것이 모두 허사요, 시간낭비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왕 연습한 것이 아까워 다시 열심히 연습해 다음 콩쿠르에서 일등을 했다. 그러나 기쁜 것도 한순간.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허탈하다. 경쟁에 져도 불만, 이겨도 불만이다. 외부에서 ‘동기가 강요된’(extrinsically motivated) 경우다.

왜 공부하는가? 한국에서의 공부란 대부분 어릴 때부터 부모의 강권에서 시작된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별별 공부를 다 시킨다. 그 공부는 경쟁에서 이긴다고 하는 목적 하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하면 지나칠까? 모르던 것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얼마나 기쁜가.”하는 공자의 호학 정신에서 너무 멀다.

어떻게 해서라도 ‘엄친아’처럼, 혹은 그보다 더 좋은 성적을 얻어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는 치열한 경쟁의식 하나로 악전고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다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해도 물론 허탈하고, 비록 이룬다 해도 역시 허탈하다. ‘불만 공화국’에 자살률 상위국, ‘행복지수’(GNH) 하위국. 이것이 우리가 교육에서 바라던 바일까? 더 많은 학생들에게서 호학의 자세를 보고 싶다.
2011-04-2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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